어렸을 때 부모님과 당일치기로 등산을 다녔다. 주말이면 부모님은 조막만 한 내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산에 갔다. 매번 코스는 관악산이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TV를 켰다. 9시가 되면 MBC로 채널을 맞추고 '세계명작만화'를 봤다. 만화가 끝나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부모님과 버스를 탔다. 점심은 산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버지의 커다란 가방 안에는 부루스타와 부탄가스 두어 개가, 어머니의 가방에는 삼겹살과 쌀, 찬거리가 몇 가지 들어있었다. 점심이 되면 형제가 없던 나는 욕심껏 고기를 입안에 욱여넣었다.
아이들의 걷고 뛰는 속도가 나와 비슷해지면서 가족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산보다는 바다로 차를 몰고 가서 먹고 자고 싸고 걷고 왔다. 속초로 여수로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하지만 통영만큼은 매년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꼬박꼬박 가족끼리, 가끔은 친구네 가족과 갔다.
그즈음 통영에 가면 습기 없는 찬 바람이 잎을 잃은 나뭇가지 사이를 휘잉 지나는 모습을, 겨울비가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과 함께 바다 멀리서 해변으로 몰려오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압도적인 자연의 모습이 나의 걱정거리를 보잘것없이 만들어주어 좋았고, 다른 한편으로 앙상한 나무가 칼을 품은 바람을 버티어내는 모습이 좋았다.
비 오는 바다와 앙상한 나무는 겨울이면 흔해서 여행지가 꼭 통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맘때면 꼭 통영으로 갔다. 아기자기한 동피랑 벽화마을, 이순신 공원에서 보이는 한산도의 웅장함, 케이블카에서 보는 수려한 경관도 인상적이지만 어릴 적 일요일 아침 9시만큼 설레는 건 통영 중앙시장 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아주머니 앞 고무대야에 담긴 전복과 멍게, 그리고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 물회다.
다행히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은 바다음식을 잘 먹는다. 아이들은 대야 속 멍게들이 꼬물거리며 내뿜는 공기방울을 신기해하고, 흥정에 여념이 없던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찌르던 멍게 몇 마리를 얼른 비닐봉지에 주워 담고는 아이들 손에 쥐어준다. 어쩔 수 없이 꺼낸 만 원짜리 몇 장에 전복과 회를 함께 받아 들고는 숙소로 돌아온다.
혀에서 미끈거리다가 오도독 씹히는 전복 조각에 초장의 신맛과 고소함이 섞이면 살짝 비리면서도 달콤한 향취가 입안에 화악 퍼진다. 거기에 찬 소주를 부으면 살짝 남은 입안의 텁텁함이 씻기며 기분이 알싸해진다. 아이들은 회를, 아내는 멍게를, 나는 전복을 허겁지겁 씹고 삼켰다. 바다 냄새나는 익히지 않은 해산물에 소주를 곁들이며 세상에 이런 조합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첫날 해산물을 먹으면, 다음날 아침은 시락국을 먹었다. 아이들은 커다란 계란말이를 어설프게 젓가락으로 찍고 입안 가득 넣어 우물거렸다. 나와 아내는 국물에 부추와 방아잎을 섞고 밥을 말아 마셨다. 뜨끈하고 흙냄새 나는 국물이 몸에 섞이면 이른 아침인데도 몸이 노곤해졌다. 점심때쯤 입이 궁금해지면 꿀빵을 사 먹었다.
바닷가에서 물회는 흔하디 흔한 음식이다. 고추장에 설탕, 식초와 신선한 야채를 섞고 잡어를 뼈채로 회 뜬 싱싱한 세꼬시를 살얼음 위에 슬쩍 올려낸다. 야채와 회를 국물에 휘저어 한 젓가락 입에 넣으면 맵고 시큼한 맛이 혀를 자극하고 세꼬시의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살얼음 낀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으면 절로 크으 하는 소리가 나온다.
어릴 적 부모님과 오르던 관악산의 추억은 땀을 쏟으며 도착한 약수터에서 바가지로 들이키던 약수의 시원함,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밥 위에 삼겹살을 얹어주시던 부모님의 미소, 입속에서 느껴지던 삼겹살의 진한 풍미와 기름장의 고소함으로 남아있다.
여행의 추억은 눈보다 입으로 남는다. 해외에 있는 지금 한국의 통영 여행이 간절한 건 아주머니가 비닐봉지에 담아주던 전복과 멍게, 입안 가득 회를 부지런히 씹던 아이들의 웃는 얼굴, 그리고 매콤한 물회 한 젓가락과 맑은 소주 한 잔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