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십수 년간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난 곳은 일터다. 그리고 일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를 요구한다. 결국 그에 부응을 하는 것이 내 밥값이지만 가끔씩 스스로가 호구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느낌은 감정이란 한정된 자원을 소모시킨다.
오늘도 사람들은 전화로, 메일로, 회의로, 지시하고, 부탁하고, 물어보고, 자료를 요청하고, 확인과 승인을 요구한다. 하루 종일 자료를 만들고, PT를 하고, 메일을 쓰고, 전화로, 메신저로 답을 하며, 어플로, 메일로 승인을 올리고, 승인을 한다. 말로, 글로, 자료로, 숫자로, 클릭으로 쉴 새 없이 커뮤니케이션 하지만 정말 상대가 알아듣는지는 모른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이메일 중 제대로 읽는 건 나도 많지 않다.
원하는 게 뭔지 물어봐도 쉽게 답하지 못한다. 남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부탁하는 것도 서툴다. 웬만하면 스스로 해결하려 하고 일을 넘겨야 할 때는 우물쭈물하기 일쑤다. 다행히 서너 명 이상 데리고 일을 해본 적이 드물어 20여 년 가까운 직장생활 중 크게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 회사생활을 가끔 버겁게 만든다.
후배들은 험한 소리를 잘 못하는 나를 편하게 대한다. 사실 나이나 연차가 높다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긴 적이 없어 편하게 대해주는 후배들이 기껍다. 다만 불쌍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승진하기만 바랄 뿐이다. 물론 그게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 해온 것보다 짧을 앞으로의 회사생활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삶에서 회사의 비중은 줄어든다. 하지만 그건 마음가짐뿐 시간의 비중이 줄어든 건 아니다. 여전히 신경 쓰고, 감정을 소모하고, 기력을 쏟지만 조금씩 마음을 줄여나간다. 젊음을 쏟아붓고, 업적을 이루어도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흔적조차 사라짐을 안다. 세상은 멈추지 않으며, 누구든 결국 흐름의 일부다. 나고 흐르고 사그라진다. 모든 삶이 그럴진대 지금의 욕심은 흐름의 마지막에 회한으로 돌아옴을 안다.
일상을 조금이라도 즐거움으로 채우는 것이 매일의 다짐이다. 한 가지라도 오늘의 미소를 기억할 수 있으면 된다. 그 미소가 인터넷에서 본 유머일 수도, 아이의 애교, 또는 아내나 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일 수도 있다. 맛있는 점심 한 끼, 좋은 책의 한 문장일 수 있다. 그래서 사소함을 놓치지 않는 여유가 필요하고, 그 여유는 안 좋은 일에 감정을 소모하지 않음으로 나오는 걸 안다.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보면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무기들을 보유하고 사용할 힘을 가진 국가의 대통령이 정신 나간 트윗을 매일 수십 개씩 올리고, 전 세계적 위협으로 선언된 바이러스의 창궐로 매일 수만 명이 죽어나가는 와중에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서치 하는 초현실적인 일상에서, 일 때문에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어찌 보면 웃기는 일이다.
그저 세상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하면 되는 일이다.
그 속에서 내가 대단치 않음을 인정하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