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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Sep 03. 2020

파업에 대하여

1928년 12월 5일 컬럼비아 산타마리아 근처 시에나가에 위치한 교회로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11월 12일부터 파업을 시작한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소속의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수주 동안 계속된 파업으로 회사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당시 바나나는 미국에서 한창 인기 있는 과일 중 하나였으며,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의 설립자 마이너 C. 키스는 코스타리카에서 미국에 이르는 철도를 건설하고 유통망을 장악하여 바나나 판매를 통해 거대한 부를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바나나 농장에서 더위와 곤충, 독사들과 싸우며 하루 14시간이 넘는 고단한 노동을 견디던 노동자들은 점점 늘어나는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더는 버티지 못했다. 등에 진 소쿠리와 삽을 던진 노동자들은 산재보상 보장, 숙소 위생개선, 주 6일 근무, 최저임금 인상, 현금 대신 쿠폰 지급 금지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는 수차례의 협상과정에서 요구조건을 모두 거부했다. 지속적인 병해로 바나나 경작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회사는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비용을 줄여야만 했고, 노동자의 임금은 줄이면 줄였지 절대 늘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달 가까운 파업으로 불어난 손실을 견디지 못한 회사는 컬럼비아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보고타에 파견된 미국 정부 관리와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소속 관리는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이며 컬럼비아 정부를 전복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미 정부는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컬럼비아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1928년 12월 5일 미구엘 맨데스 컬럼비아 대통령은 보고타에 있던 300여 명의 군대를 바나나 농장에 긴급히 파견했다. 군인들은 교회 앞 중앙광장 가장자리의 낮은 건물 지붕 위와 주변에 여러 대의 머신건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고 삼삼오오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회에서 나오던 노동자들이 마주한 건 머신건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총알세례였다.


아직까지 정확한 사망자 수는 확인된 적이 없다. 당시 작전을 수행한 코르테스 사령관은 사망자가 47명이라고 밝혔지만 사망자가 2천 명이 넘는다는 비공식적인 통계도 있다. 그렇게 노동자의 파업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노동의 제공을 거부하고 작업을 중지하는 행위다. 결과적으로 파업은 해당 노동자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들 자신의 고용과 소득, 미래를 걸고 자본가에 맞서는 투쟁의 극단적인 방식이다. 지금의 노동자의 권리는 그렇게 그들이 직접 피를 흘려가며 쟁취해낸 것이며, 그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다른 사람의 피와 고통을 담보로 본인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역사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파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나 같은 소시민은 이러한 새로운 파업의 패러다임이 제발 보편적이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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