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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Dec 14. 2016

촛불집회에서...

                             

찬바람이 불때마다 몸이 움찔거렸다.  촛불을 꼭 쥔 소녀의 손이 하얗다. 오른손으로 엄마손을 꼭 붙잡고 종종 걸어가는 소녀를 보니 괜시리 내가 죄지은 것 마냥 미안하다.  


이리저리 오가는 군중에 떠밀려  광화문 사거리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길을 잃을까 아까 그 소녀처럼 와이프 손을 꼭 잡았다. 


머리 위에는 '오버워치 심해유저 연합회'라는 의미를 알기 어려운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앞에는 고등학생, 많아야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열심히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8시 즈음 주최측이 마침내 150만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함께 소리지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여학생들이 사라졌다. 대신 젊은 커플이 꼭 껴안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괜히 심통이 나 와이프에게 배고프다고 칭얼댔다. 시끄럽다고 한다. 장시간 추위에 시달리면 모근이 약해져 머리가 빠진다고 나름의 절박한 이유를 댔다. 0.1초만에 기각당했다. 


내가 이러려고 시위 나왔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와이프를 힐끗힐끗 보면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퇴진하라!  퇴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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