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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군 Apr 02. 2023

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6층에 자리한 65병동의 5인실 창가 끝자리가 내 자리다. 5인실은 생각보다 공간이 있는 편이었다. 다행히 간호병동을 배정받아 보호자가 상주할 필요도, 간병인을 고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 덕분인지 병실은 환자들과 상주하다시피 하는 간호사 한 명만 있었다. 북적대지 않고 비교적 조용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왼쪽 손목에 수액 바늘을 꽂고 침대에 누웠다. 이제 한가하게 책이나 보고 낮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맞은편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내가 입원하기 전날 복부 수술을 받은 여든이 넘는 환자였다. 방광에 연결해 놓은 소변줄이 혈전에 막힌 것 같았다.


3시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아 간호사들이 내내 분주했고, 나중에는 비뇨기과 의사도 호출받아 병실로 왔다. 그렇게 한참을 걸려 겨우 통증을 가라앉힌 것 같았다. 환자는 고통과 긴 소란 끝에 지쳐 잠이 들었다. 간호사들은 계속해서 환자들의 대소변과 혈압, 산소포화도, 맥박을 확인하고 기록했다. 나는 수술이 다음날 아침이라 오후 내내 책을 읽고, 다른 환자들을 멀뚱멀뚱 지켜보기도 하고, 폰으로 웹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잠깐 유튜브를 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금식은 밤 12시부터라 부담 없이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날 첫 수술로 스케줄이 잡혔다. 6시쯤 간호사가 다가와 속옷은 탈의했는지, 금식은 지켰는지 체크했다. 그리고 혈압과 맥박을 확인하고 수술실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의 조명들을 하나하나 지나치는 기분은 뭔가 기묘하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가면 꼭 나오는 시퀀스다. 바퀴 달린 이송용 침대에 누워 천장의 조명들을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 심각한 부상과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는 클리셰다. 물론 영화에서나 그렇지 응급 상황이 아닌, 내 입장에서는 별다른 긴장감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서는 수술실에 있을 로봇수술 기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로봇수술을 선택하면서 세배나 비싸진 병원비도 생각했고…


수술실에 들어가자 간호사가 다가와 본인이 맞는지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의료진이 다가와 수술용 침대로 옮기고 몸을 고정시켰다. 곧 마취될 거라고 누군지 알 수 없는, 마스크를 쓴 어떤 의료진 중 한 명이 말했다. 천장에 달린 조명과 여러 기계, 장비들, 그리고 꽤 많은 숫자의 의료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곧 왼쪽 손목 수액줄을 통해 뭔가 시원한 액체가 몸에 들어왔다. 수면내시경과 정확히 같은 느낌이었다. 10초도 걸리지 않아 의식을 잃었다. 결국 로봇수술 기계는 못 봤다.


눈을 뜨니 입원실로 돌아와 있었다. 가슴과 겨드랑이에 잔뜩 거즈가 붙어있었고 머리가 멍했다.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간호사가 마취가 완전히 깰 때까지 자면 안 된다며 잠을 못 자게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버티다 자도 된다는 말에 바로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나서 정신을 좀 차리고 보니 왼쪽 겨드랑이를 통해 카테터가 수술부위인 목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수술부위에서 피를 빼는 용도라고 한다. 별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 등받이를 세우고 계속 책을 읽었다. 그리고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약을 주면 약을 먹었다. 수액줄이 불편해 침대에서 가능하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퇴원했다.


병원은 누구에게나 그리 유쾌한 장소는 아닐 것이다. 환자들은 고통을 참아야 하고, 간호사들은 고통과 불편함에 인내심이 소모된 환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피곤에 절어 있는 의사들은 무심하게 치료경과와 주의사항을 전달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래도 병원은 인류 최고 수준의 지식과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진보의 상징이며, 금자탑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MRI, CT, PET-CT 등등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주변 조직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암세포만 표적으로 파괴하는 중입자 치료기까지 등장했다. 또한 AI와 빅데이터 기반 의료기기도 속속 개발 중이니 가히 병원은 상용화 가능한 첨단 기술을 가장 먼저 체험할 수 있는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우리는 비싼 의료비를 부담하며 더 긴 삶을 연명한다. 기술을 통해 우리는 온갖 기적을 행하며 죽음을 미룬다. 암을 치료하고, 절단된 사지를 붙이고, 인공 장기로 망가진 몸을 재생하며, 바이러스를 막아낸다.


하지만 그런 기적 같은 기술로도 풍성한 머리는 요원하다.

과연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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