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일(事)과 정신(心)의 문제에서 엔트로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렇듯 주의를 주는 이 말은 '엔트로피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책 <쉽게 읽는 엔트로피>, 21쪽 끄트머리의 글귀다. 역으로 마음의 문제를 물리학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없지 않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나는 사랑에 대해 느낀 바를 잘 이야기하고 싶어서 물리 서적을 봐야 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이해로, 정신세계를 해석하려는 오류를 빚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적 과제들을 올바로 주시하고자 한다.
브라이언 그린의 책 <우주의 구조>에는 엔트로피 개념이 등장한다.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를 설명하기 위해 두 쪽에 걸쳐 수(數)가 적힌 부분이 있다. 693장의 제본 안된 <사랑과 전쟁> 원고가 바람에 날려 모두 주웠을 때, 페이지 순서의 경의 수를 쓴 것이다. 특히 숫자 ‘9’가 실제로는 세 줄 정도임에도 한쪽을 거의 다 채우고 있다고 잘못 기억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무질서한 경우의 수는 유일한 질서 하나를 뺀 것으로, 무질서할수록 9가 불어나는 패턴을 보인다.
(예, 5!-1=119, 10!-1=3628799)
여기서 9는 계산된 수와 관계없이 결국 하나뿐인 질서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질서를 상실한 경우, 물리적인 변화가 있는 만큼 마음의 동요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된다.
오래된 책을 떨어트렸는데, 책장이 흩어져 모았다. 어떤 이유로든 책장이 뒤죽박죽 섞인 문제라면 시간을 들여 순서대로 되돌리거나 그대로 읽어도 이야기의 흐름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이때 책이 망가졌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면, 책을 보고 느낄 심경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바로 인과 관계 외 가치를 살펴보는 시각이 더해진 이유다.
결론적으로 무질서는 상처를 불러온다. 상처이자 상처로 인해 생성된 패턴이 9로 드러난다. 동시에 9는 환영이다. 무질서할 가능성이 아무리 많더라도 동시에 여러 결과를 마주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제외한 질서를 마주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9는 실재이자 환영인 것이다.
붙임 | 너와 나 사이의 한마디 말 · 금요일 | Sleeping Forest · Love In Entro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