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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02. 2024

나만의 얼개를 짜는 시간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엊그제 꿈속에서 나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에 여러 대의 버스를 놓쳤다. 어릴 적부터 수 없이 오고 오갔던 노선에 있던 정류장이었는데 그날은 왜인지 낯선 장소로 느껴졌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재차 목적지를 확인한 후 올라탄 버스에는 앉을 곳이 없었다. 꿈에서 깨고 난 후 해몽을 찾아보니 새로운 시작이나 변화에 대한 강한 갈망을 나타낸다고 한다. 혹은 삶의 변화를 앞두고 있을 때 느끼는 두려움이나 기대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나의 무의식이 ‘변화’를 욕망하는 걸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 하고 있던 일도 함께 마무리했다. 그곳에서의 일을 정리할 명분으로 이사를 택한 것인지, 오랜 시간 고민하던 이사를 결정한 후 자연스럽게 일을 마무리하게 된 건지, 어떤 선택이 먼저 이뤄졌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때의 나는 스스로 하고 있던 일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혼란스러웠고 그 감정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우연찮게 발을 들인 치열한 입시판에서 12년을 아이들과 동거동락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 공부했고 배운 지식을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티칭이었다. 어렵게 느끼는 언어를 알아가면서 성장하는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10년 차가 넘어가면서 나의 학창 시절과 별다를 것 없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회의, 아이들과의 세대차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교감, 매년 반복되는 4번의 시험과 수능을 거치면서 쏟아내는 에너지와 공허함은 직업인으로서 일의 지속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매번 시험을 치르면서 고군분투하고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짠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이런 상황에 내모는 일과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업’으로 일을 지속하기 위해 나에게 물었다.

Q.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성장하고 있는가?

Q. 과정이 즐거운 일을 하고 있는가?

Q.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여하고 있는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온 후 6개월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물음표인 상태에서 멈췄다. 뚜렷한 정답이 없는 질문들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어쩌면 나는 그저 일이 힘들어 포기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얼 찾고자 혹은 가고자 하는지 알 수 없어 닥치는 대로 읽던 그때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서 무인양품 디자이너 하라 켄야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Q. ‘충분’은 자제력을 의미합니까?

A. 약간의 포기가 있죠. 어느 정도 수준까지 더 갈 수도 있지만, 그 정도에서 선을 긋는 것. 어떤 확신을 갖고 레이스가 달린 수건이 아니라 단순하고 질 좋은 무인양품의 수건이 좋다고 결정하는 거죠. 그런 능동적인 소비자가 멋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멈추기로 한 결정은 포기였지만 어떤 확신에서 비롯한 능동적인 나의 선택이었다는 시선에서 바라보니 위안이 되었다. 내적갈등 속에 마음이 요동치는 시기는 가장 나다운 선택을 내리기 위해 침전물을 가라앉히는 시간으로, 느린 행동력은 힘차게 달려 나갈 때를 위해 숨을 고르는 과정으로 바꿔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그 시간들을 모래알 흩어지듯 놓치고 싶지 않아 기록하기로 했다. 아침엔 모닝페이지를 쓰고 저녁엔 감정일기를 쓴다.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먹고 자고 읽고 쓰는 자연스러운 내 모습의 하루를 기록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기록들이 모여 내 마음이 욕망하는 길을 보여줄 거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변화의 물결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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