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의 소들

by 남청도

어릴 때 지붕위에 가끔식 올라간 적이 있었다.

당시 시골집들은 대부분이 초가지붕이었고 부잣집에서는 기와로 지붕을 얹었다.

초가지붕은 해마다 짚으로 나래장을 엮어서 초겨울 지붕을 새로 이었다. 그렇치 않으면 짚이 썩어서

지붕에서 안방으로 빗물이 새었다. 지붕을 일때는 헌 나래장을 걷어내고 새것으로 바꾸었다.

겨울에는 바람이 세므로 나래장 위에 긴 장대를 가로 질러 묶어 놓고 이리 저리 새끼줄로 동여 매어 놓아야 했다.


시골에선 박을 심으면 나무 가지를 세워 박 줄기가 지붕으로 타고 올라가도록 안내를 했다.

지붕으로 올라간 박 중기는 햇볕도 쨍쨍 내리쬐는 곳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가을이 되면

둥실둥실한 박이 지붕 위에 여러 덩이가 열린다. 서리가 내릴 때쯤 지붕에 올라가 칼로 박을 따서

지붕 아래로 내려 보내서 가마솥에 박을 삶아서 바가지도 만들고 박나물도 해 먹고, 박 우구리도 만들어 말려서

보관했다가 국에다 넣어 먹기도 하였다. 흥부집 지붕에도 큰 박이 열려 톱으로 켜자 대박이 터진 경우도 있다.


지붕위의 바이올린(Fidller on the roof)나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라는 말은 들어봐도 '지붕 위의 소들'이란 말은 처음 듣는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미국에서 제작된 노만 주이슨 감독의 1971년 뮤지컬 영화이고,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테네시 윌리암스의 소설을 영화화 하여 1958년에 개봉한 영화로 1955년 3월 E. 카잔의 연출로 뉴욕에서 초연했다. 내용은 미시시피의 부유한 농장주 일가의 재산을 둘러싼 싸움을 배경으로 가정이라는 옛질서의 붕괴와 고독, 동성애,부부생활의 위기 등이 묘사돼 있다고 한다.


한편 '지붕위의 소들'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고 소설도 아닌 실제로 우리나라 구례에서 벌어진 실화이다.

어제 신문기사의 의하면, 지붕 위에서 살아남은 소들... 물빠지고도 못 내려와 '음매'하고 울고 있단다.

9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에서는 1500여마리 소들을 여러 축사에서 밀집사육하고 있었는데 전날 폭우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수해가 덮쳤다. 축사나 시설에 갇혀 못 빠져 나온 소들은 죽고 나머지 소들은 축사를 벗어나 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고, 발버둥쳐서 살아난 소들은 축사지붕이나 지택 지붕을 딛고 버텨 살아 남았다. 물이 빠지고 나자 지붕 위에 오른 소들은 3~4m 의 높은 지붕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자 사람들은 트랙터나 굴삭기 등을 동원하여 내리기도 하고 방법이 여의치 않으면 축사 일부를 허물어 비스듬한 길을 만들어 소를 끌어 내리기도 했단다.


수해에 놀란 소들이 주인이 소를 당겨도 꿈적도 하지 않아 먹이로 유인해도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죽은 송아지를 줄에 매어 끌고 가자 그때서야 자식을 따라 움직였다고 한다. 우둔한 소도 '죽은 자식을 보고 따라가더라'고 농민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고 한다. 전날 해발 531m 사성암에는 축사에서 수해를 피해 나온 소 십여마리가 몰려와 있다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주인의 인솔로 산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옛부터 정치의 기본의 치산치수(治山治水)다.

강은 강물이 흘러가야 한다.

강물은 가뭄때는 바닥이 드러나지만 요즘 같이 집중 호우나 폭우가 쏟아질때는 범람하는 수가 많다.

예전에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낙동강은 해마다 호수피해를 입었다.

그 후 댐을 막고 해서 홍수피해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강물을 수용할 수 있는 용량측정을 잘못 산정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얼로안스(여유 혹은 안전 마진)를 적게 잡은 행정당국의 잘못이 크다.

일본에서도 큰 해일이 닥쳤을 때 마을을 높은 지대로 이주시키고 제방을 크게 높혔던 마을에서는 킨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노인의 말을 듣고 실행에 옮겼던 주민들의 후손들은 안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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