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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by 남청도

새벽에 눈을 떠고 시계를 보니 3시 53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 것이 아니라 침대 옆에 둔 모바일폰을 켜 본 것이다.

일기예보에선 자정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창밖 애 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없어 창밖을 내다보니 땅바닥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도 수막현상이 생겨 '쏴아'하며 바퀴가 도오에 접착하는 소리도 들린다.


요즘은 일기예보가 거의 정확히 알아맞힌다.

예전에는 엉터리 예보가 많아, 일기 예보관은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거짓말 예보관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욕을 많이 듣게 되었는가 하소연을 내뱉기도 하였다.

오늘 비가 오지 않는다면 무학 테니스회 6월 월례회 날로 가야 코트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지난달에도 둘째 주 토요일에 비가 와 시합을 하지 못하고 자갈치 횟집에 모여 술잔으로 대신했었다.


요즘 모두들 장사가 안된다고 야단들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선 세금으로 돈 풀기 시합이나 하듯이 선심을 쓰고 있다.

'망하는 집안 머슴밥이나 많이 줘라'는 식인가? 그 바람에 나랏빚만 잔뜩 늘어나 베네 쥬 엘라나 그리스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공짜 돈 생겼다고 그 돈으로 소고기를 사 먹었다고 하더니만 한우 고깃값만 천정부지로 올려놨다.


그저께 카페에 '조가비'란 글을 진열장에 올려놨다.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조회수가 0으로 남아 있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 판에 이것저것 내다 걸어둔 나에게도 잘못은 있다. '처녀가 애를 봬도 다 지 할 말은 있다'라고 하지 않았나.

장사가 안될 때는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오래 전의 일이다. 부산시청이 영도다리 옆에 있을 때였다. 당시 부산의 번화가는 남포동이었다.

남포동 골목길은 유행의 일번지로 양품점과 구둣방이 많았다.


당시 한 양품점에서 여자용 구두 한 켤레를 진열장에 진열해 놓았는 데

며칠이 지나도 팔리지가 않았다. 아니 값을 물어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주인은 이왕 팔리지 않는 물건이라면 장난 삼아 가격표에 0을 하나 더 붙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구두 한 켤레와 값이 대략 3만 원 정도 할 때렸는 데 3만 원으로 써 붙였던 가격 표를 치우고 새로 30만 원으로 고쳤던 것이다. 그랬더니 다음날 당장 팔려나갔던 것이다.


팔리지 않는다고 카페에 진열한 아이템들을 치울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정가표에 0을 하나 더 붙일 생각도 없다.

배를 타고 이태리 타란토에 들어갔을 때였다. 타란토는 항구도시로 이태리 지도가 부츠처럼 생겼다면 발바닥의 자숙한 부분에 해당된다. 상륙하여 시내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어느 양품점에 비치된 재킷이 마음에 들어 가격표를 보니 0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세어보니 첫자리 6이란 숫자 외에 무려 네 개나 되었다. 상점 안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다시 얼마냐고 물었다. 그는 정가표에 적힌 대로 6만 리라라고 했다. "6만 리라면 너무 비싸다. 4만 리라라면 몰라도..."그랬더니, 4만 리라에 가져가라고 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이탤리가 바가지와 소매치기가 심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 할 수 없이 4만 리라를 주고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사 체면상....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가성비(price performance)'라는 말을 잘 쓴다.

가격 대비 성능 비율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돈에 비해 얼마나 쓸모가 있느냐를 따진다.

그러나 욕구가 강할수록 가성비는 맥을 추지 못한다. 특히 여성이 더하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3체'가 있었다. '없는 게 있는 체, 모르는 게 아는 체,

곤충 중에 약한 놈은 천적을 만났을 때 갑자기 죽은 체를 하는 하는 놈도 있다.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책이 있다.

예전에 '마지막 정거장'과 함께 읽은 적이 있는 데 오래 전의 일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서 '사는가'의 뜻은 영어로는 'Live'로 쓰였지만 우리말로는 'Buy'라는 의미도 된다.

톨스토이는 모름지기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된다'라고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지만, 한편 모파상은 '진주 목걸이'에서 처럼 '여자는 허영심으로 산다'라고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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