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

by pahadi

틈나는 대로 불행을 상상한다. 얼마 전 고친 수도꼭지가 다시 새면 어쩌지.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 회사에서 다시 하라고 전화가 오면 어쩌지. 상상 속의 불행을 현실과 비교하며 위안 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불행을 대비하려는 걸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상상한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 불행은 늘 우리를 뒤통수치는 법이니까.


그렇게 불안과 불행을 곁에 두고 살았다. 약간 우울한 상태와 잠깐 괜찮은 상태를 오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늘 단순하고 잘 잊어버렸다. 신혼 때는 억울했다. 나만 걱정하고 나만 기억하는 게 억울해서 싸움을 걸었다. 성의가 없어서 기억을 못 하는 거라고,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들에 너무 관심이 없다고.


내게 남편은 신인류였다. 뭐든 대충대충 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그가 미웠다. 우리는 너무 달랐다. 나는 늘 불안했고 남편은 늘 평화로웠다.


남편이 부러웠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대충하고 모두 다 잊어버려도 큰일 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았다. 모두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요즘은 그 단순함을 닮으려고 노력한다. 불안할 때면 늘 묻는다. 괜찮겠지? 그럼! 아무 일 없어. 다 잘 될 거야. 그 근거 없는 말을 믿는다. 내가 틀리다고 우겼던 것들이 되려 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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