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해

여기, 지금, 우리 함께

by pahadi

준이의 예방접종 날이다. 바늘이 콕하고 몸을 찌르니 얼마나 겁 나고 아픈 일인가. 주사를 맞히기 위해 아이를 꽉 잡고 있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준이가 주사가 뭔지 잘 모른다는 것. 주사실에서도 한 치 앞을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쁘다. 그러다 주삿바늘이 제 몸을 찌르는 순간, 앙! 울어댄다. 두 개의 주사자국을 훈장처럼 새기고 까까를 받아냈다. 까까를 입에 넣고 울음을 그친 준이 대신 함께 간 조카가 울기 시작한다.


“아아앙!”

“네가 주사 맞은 것도 아닌데 왜 울어?” 우리는 당황했다.

조카가 울며 대답했다.

"너무 아파. 너무 아프단 말아야. 준이가 너무 아파. 내가 주사 맞았어"

조카의 뛰어난 공감능력에 크크큭 웃음이 났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제 것이라 생각하는 귀여운 상상력까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 울었던 것이 언제였나. 우리는 긴 우주의 시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나.


누구나 혹독한 사춘기 시절을 지난다. 그 시절은 잘 아물었어도 때때로 상처로 떠오른다. 사회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로부터, 또 자신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우리를 어른이 되게 한다. 상처를 잘 받지 않는 어른이 되도록 한다. 우리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고 거리를 둔다. 그리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단절 속에서 마음은 평온하고 무슨 일이든 무감각해진다. 왜냐하면 나와 상관없으니까.


공감은 가까울수록, 친밀할수록, 유사할수록 잘 일어난다고 한다. 공감의 바탕은 상상력이다.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 하지만 우리는 상상력을 잃어버렸다. 사무실, 컴퓨터, 스마트 폰에 갇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상상할 수 없다. 오로지 나와 그것만 있을 뿐. 그래서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도 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 점점 나만 아는 인간이 되어 가고 있지 않나. 다른 사람의 슬픔보다 나의 편리함을 우선하고 있지 않나. 바쁘니까 슬며시 끼어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다음을 기약한다. 임산부석은 채워져 있고, 엘리베이터에서 휠체어는 뒤로 밀려난다. 아이들에게는 노 키즈 존이 정해지고 공연을 방해한 자폐아에게는 퇴장이 요구된다. 심정지 한 택시기사보다 다가오는 비행기 시간이 더 중요하고 세월호 사건은 다 지나간 일이 된다. 너의 슬픔의 너의 것, 나의 슬픔은 오로지 나의 것. 그래야 무너져도 함께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 쉽게 무너진다.


우리는 가까운 곳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상상해야 한다. 상상할 수 있는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일단 밖으로 나가 걷다 보면 마음 쓰이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길고양이들이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비 오는 날 매미들은 어디 있는지. 옆집 아기의 우는 소리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더운 날 아파트 청소해주는 할머니는 괜찮으신지. 길 잃은 어린 학생은 잘 돌아와 건강한지.


세상 구경을 떠난 퐁퐁이는 만나는 모든 것이 마음을 준다. 꽃, 나비, 새, 구름.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퐁퐁이는 마음을 다 주어서 마음이 없어져버릴까 봐 걱정한다. 그런 퐁퐁이에게 엄마는 말씀하신다.


“괜찮아. 마음은 샘물 같아서 얼마든지 퐁퐁퐁 솟아난단다.”


마음을 쓰자. 퐁퐁퐁 솟아나게.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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