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에 내려왔다. 아빠가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고 하신다. 뭐 어려운 일이랴. 클릭, 드래그부터 차근차근 알려드리는데 기분이 참 이상하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때 우리 집에도 컴퓨터가 생겼다. 그리고 아빠는 나와 언니를 컴퓨터 학원에 보내셨다. 아빠가 가르쳐주시고 사주신 컴퓨터를 이제 내가 아빠에게 가르쳐 드리고 있으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 봐도 부모님의 시간은 점점 빨리 흐른다. 추억보다 빨리 쌓이는 주름살과 약해진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어릴 적 아빠는 참 무서운 분이셨다. 항상 엄격하고 혼도 많이 내셨다. 아빠의 1순위는 공부, 2순위도 공부였다. 출근하기 전, 퇴근 후에는 항상 아빠와 공부해야 했다. 지금 부모가 되어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지만 그때는 정말 싫었다. 아빠가 가게를 차리고 바빠졌을 때도 공부시간은 숙제로 바뀌었을 뿐 공부에 대한 아빠의 열정은 여전했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 아빠가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당연히 "공부해"였다.
아빠와의 추억을 꼽자면 학원 안 가서 혼난 일, 시계 보는 법 배우다가 혼난 일, 내 인형들을 아빠가 버린 일...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가슴 따뜻한 순간들도 있었다. 시골에서 서울로 대학을 진학했다. 당장 집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서울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쿨쿨 잘도 잤다. 이렇게 오래 아빠,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될 줄 알았더라면 서울로 대학을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아빠는 나를 남기고 내려가시면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지나가는 말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우리 아빠가 울었다고?
내가 성인이 되고 아빠가 나이 들어가면서 아빠가 내게 부탁하는 일이 잦아졌다. 얼마 전 20년 동안 운영하시던 가게를 처분하고 나서는 아빠가 더 의기소침해졌다. 하지만 나이 들고 약해진 모습에 속상할 때가 늘어도 아빠는 언제나 내게 슈퍼맨이다. 어려운 일은 항상 상의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먼저 손 내밀어 주신다. 삶의 기로마다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빠는 다정해졌다. 하지만 가끔은 무섭게 혼내던 아빠의 모습이 그립다.(이 모습이 그리울 줄이야...) 아빠가 항상 자신감 있고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다. 어떤 모습이라도 나에게 언제나 최고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