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가 수족구에 걸렸다. 어린이집도 안 다니는데 수족구에 걸린 게 억울하고 아이의 작은 몸을 뒤덮은 수포를 보니 속이 상했다. 수포가 까맣게 변해 갈 때쯤 감기가 왔다. 하얀 콧물이 노랗게 변하다가 가래가 끓고 기침을 해댄다. 거의 2주째 집에만 있으니 심심한 준이는 단식투쟁을 하며 칭얼대기만 한다. 안쓰러움은 점점 짜증으로 바뀌고 설상가상으로 나까지 감기에 걸렸다.
어젯밤부터는 기침이 더 심해졌다. 아마도 기관지염으로 악화된 것 같다. 온몸으로 기침을 해대던 준이는 결국 먹은 것을 토하고 밤새 앓았다. 나도 밤새 아이를 돌봤다. 아침이 오면 바로 병원에 가야지. 병원 여는 시간에 맞춰 서둘러 길을 나섰다. 밤 사이 촉촉하게 내린 비까지 우리를 재촉했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 조금씩 내리는 비 때문에 몸도 마음도 더 지쳤다. 내 앞에 대기하던 11명 모두 비슷한 사정이겠지. 기다림 끝에 진료를 받고 약국에 갈 때까지 준이는 계속 칭얼댔고 준이를 달래고자 가까운 빵집에 갔다.
아주머니는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셔 소보루 식빵을 포장해 오셨다. 손사래 치는 나에게 따뜻한 식빵을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가서 맛있게 먹어요. 이건 비밀이야~."
두 번째 방문하는 가게였다. 단골도 아니었고 바쁜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친절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지쳐있었고 아기를 다정하게 달랠 여유도 없었다. '힘내라', '다 지나간다' 그 어떤 위로의 말씀도 없었지만 미소와 함께 건네 주신 식빵은 너무도 따뜻했다. 덕분에 내 마음속에 억수같이 내리던 비는 덕분에 촉촉한 봄비가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비는 더 굵어졌다. 유모차 끌며 우산을 쓰기도 어려웠고 비를 맞지 않겠다는 의지도 없어 그냥 비를 맞고 걸었다. 준이는 유모차 속에서 어느새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 속에 길을 건너는데 누군가 말을 건넸다.
"우산 같이 써요."
한 아주머니께서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씌어주셨다.
"머리라도 비 안 맞으면 좋잖아요."
운이 좋았는지 목적지도 같았다. 작은 우산을 나눠 쓰니 아주머니의 어깨는 젖어갔고 나는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했다. 집에 도착하자 아주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어서 들어가요.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요."
오늘 내가 받은 친절은 평범한 일이지만 요새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이유 없는 친절이라니. 심지어 연달아 두 번이나 도움을 받다니 아직 참 살만한 세상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는지, 아니면 요새 많이 지쳐있었는지 오늘 일에 마음이 더 녹아내린다. 이 기분 좋은 일은 적어두고 오래 기억해야지.
친절을 베푸는 일도 꽤나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었나. 하지만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분께서 나에게 주신 건 위로와 용기였다. 생각이 들면 행동으로 옮겨보자. 그것이 따뜻한 마음이라면 더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