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남천!

by pahadi

침대에 누워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 글, 저 글 휙휙 넘기다가 한 곳에 눈길이 머물렀다. 촉촉한 빗물을 한껏 머금은 싱그러운 나무 사진 때문이었을까. 글쓴이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남천은 어디서나 잘 자라서 여기저기 쉽게 볼 수 있어요. 남천은 악귀를 막아주기 때문에 담벼락 주변과 대문 근처에 많이 심는대요. 남천의 꽃말은 전화위복이에요. 나쁜 일인 줄 알았는데 좋은 일이 된다는 전화위복! 나쁜 일이 있으시다면 잊으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 속 나무의 이름은 남천이었다. 흔하디 흔하게 생긴 초록 잎사귀 사이로 하얀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움트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내린 비로 남천은 더없이 싱싱하고 푸르렀다. 꽃봉오리까지 품은 남천은 생명력 그 자체였다. 그 기운이 나에게까지 와닿았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가뭄에 단비처럼 내 마음을 적셨다.


오후까지 비가 이어졌다. 내 마음속 비도 영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복잡한 머리를 잠재우려고 책을 폈다. 우연찮게 식물에 관한 책이었다. 빼곡한 글자들 사이로 반가운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남천! 아침만 해도 모르는 사이였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봄의 남천도, 여름의 남천도 아름답지만 나는 가을의 남천과 겨울의 남천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맘때의 남천들은 정말 복잡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요. 각자의 속도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제각각의 형태와 색을 입고 있지요. 어떤 남천은 새로 연둣빛 이파리를 올리기도 하고, 어떤 남천은 끄트머리만 노랗게 말라 붉고 초록이며 노랑인 복잡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요. 해가 너무 많아서, 해가 부족해서, 추워서, 아직 덜 추워서, 영양분이 부족해서, 뿌리가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색으로 세상을 맞이하고 서 있는 이들이 아름답습니다. "

- 임이랑,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


저녁쯤 비가 그쳐 산책길에 나섰다. 흔한 나무라니 우리 아파트 화단에도 남천이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쉽게 남천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잎사귀들도 초록빛, 붉은빛 각기 자신만의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새하얀 꽃도 펴낼 것 같았다. 대견하고 기특했다. 아무도 귀하게 보지 않는 곳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며 꽃을 피워내는 남천이 나에게 나지막한 위로를 건넸다. 너도 꽤 잘 살아내고 있어.


내가 사는 곳곳에, 내가 걷는 곳곳에 심긴 남천이 불운을 물리쳐줄 것이다.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듯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샘솟았다. 먹구름 사이로 빼꼼 밝은 보름달이 인사한다. 모두 다 안녕(安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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