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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hadi Sep 21. 2021

애기똥풀

동글동글 살고 싶다.

애기똥풀. 내가 좋아하는 꽃이다.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지만 왠지 정이 가는 꽃이 있다. 길가에, 들에, 산에 흔하게 피어있는 이 작고 노란 꽃에 유난히 눈길이 다. 모든 인연의 시작이 그렇듯이 자주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고 통성명은 없었지만 우리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굳이 이름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기똥풀이라는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애기똥풀의 생김새를 말하자면 꽃도 동글동글, 잎도 동글동글하다. 노란색 꽃에는 둥근 4개의 꽃잎이 앙증맞게 달려있다. 아기자기한 모습이 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애기똥은 어쩐지 귀여운 면도 있을 것 같아 어느 정도 타협 가능한 이름이다. (실제로는 줄기를 끊으면 나오는 노란 액체가 애기똥과 비슷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꽃도 꽃이지만 기똥풀의 가장 매력은 동글동글한 잎이다. 쑥과 비슷하게 들쑥날쑥 자유분방한 형태인데 끝이 둥글어서 훨씬 천진난만한 느낌이다. 그 모습이 꼭 뭉게뭉게 핀 들판의 구름 같아 동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가 뾰족뾰족한 인간이라 이런 둥글둥글한 모습에 더 끌리는 걸까. 나도 애기똥풀처럼 둥글게 둥글게, 쌩글쌩글 살고 싶다.


길가에 핀 이름 없는 노란 꽃 위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겹쳐지고 그 위로 시 하나가 또 얹어진다.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애기똥풀은 나에게 더 특별해진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안도현 <애기똥풀> -


이 시를 읽으며 내가 놓친 것들을 생각한다. 조금 더 앞서가려, 앞만 보고 걷느라 보지 못한 것들을 생각한다. 남들과 비교하느라 바빠 지나친 것들을 생각한다.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것들을 생각한다. 어김없이, 당연하게 내게 주어진 것들의 고마움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으스대던 밤들이 부끄러워진다. 그저  애기똥풀처럼 세상에 흠내지 않고 동글동글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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