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크리스마스

by pahadi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만으로 설레는 날.

종교가 없는 내게는 그냥 빨간 날에 지나지 않지만 그냥 크리스마스니까 기분이 좋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그 전에는 어떻게 보냈더라. 기억이 안나는 걸 보니 역시나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았나 보다. 올해도 별 계획 없이 집에 머물 테지만 그래도 신이 난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뭔지 모르는 두 살배기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은근슬쩍 넘어가고 남편과 서로 책 한 권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기로 했다. 연애시절도 아니니 그냥 편하게 각자 자기가 사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고르는 거다. 그리고 생활비로 결제. 이게 뭔 선물인가 싶지만 선물이라고 정하면 선물 아니겠는가.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이 사라져서 크리스마스 느낌은 덜 나지만 그래도 서점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전구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비싼 책을 사야지. 특별한 날이니까. 나는 <100 인생 그림책>을 골랐다. 0살부터 100살까지 인생을 일러스트와 함께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따뜻한 그림들이 가득한 책.


33 - 잠이 모자라도 버티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올해 내 나이는 33살.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잠이 모자라도 버티는 법을 배운 해였다. 올해는 엄마와 아들이 병원신세를 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기도하며 보낸 시간들. 지금 우리가 무사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삶을 대해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해였다.


34 - 이제 어른이 된 거지.

내년에 나는 34살. 나는 20대에도 다가올 30살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스럽고 안정된 내가 기대되었다. 34살! 과연 내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버겁기만 했던 올해가 나를 많이 성숙하게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약하고 두렵다. 그래도 더욱 당차게 살아야지.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서.


돌아오는 길에 케이크도 하나 샀다. 크리스마스라는 새 옷을 입은 케이크들을 오늘의 주인공 같았다. 예쁜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미리 준비해둔 샹그리아를 곁들일 것이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우리 부부가 유일하게 즐기는 알코올이다. 저렴한 와인으로도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는 마법 같은 음료. 단지 필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뿐이다. 와인에 약간의 사이다를 넣고 사과, 귤, 레몬 등 상큼한 과일들을 썰어 넣는다. 그리고 하루 이틀 숙성하면 된다.


사랑하는 가족, 케이크와 와인이면 우리의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완성된다. 거기에 가지고 싶던 선물까지 받았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크리스마스다. 해가 지고 거리의 불빛들이 반짝이면 우리들의 케이크에도 촛불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영원하길 간절히 빌어본다.


내년에도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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