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무척 엄한 분이셨다. 그때는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러했고 아빠라고는 우리 아빠밖에 겪어보지 않았으니 아빠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니와 나는 자주 혼났고, 늘 혼날까 봐 두려웠다. 아빠의 낮은 목소리, 그리고 사랑의 매는 아빠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다정한 모습도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두 딸을 두고 밤낮으로 일해야 했던 터라 더 엄하게 기르신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른이 되고서도 혼나는 것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혼이 날까 걱정했다. 그 대상은 아빠로 국한되지 않았다. 대학시절엔 교수님께 혼이 날까 두려웠고, 직장에 다니면서는 상사에게 혼이 날까 전전긍긍했다. 지나가는 행인이나 가게 주인 상관없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불편했다. 불시에 나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다. 잠이 안 오는 밤이면 혼나는 온갖 상황을 상상했다.
나는 착한 아이였다. 혼날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산다는 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불편한 일은 도처에 있었다. 식당에서 반찬을 더 달라는 사소한 부탁도 남편을 통해야 했다. 문의 전화도 언제나 남편의 몫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과 결혼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늘 나에게 말해주었다. 아무도 나에게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누군가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 거라고.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낸다면 "왜 저에게 화를 내세요?"라고 되물으라고 알려주었다. 별 거 아닌 이 말들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사람들은 다 큰 어른에게 화를 낼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내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화풀이에 가깝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부족함이니 자책하거나 상처받을 필요 없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의 콤플렉스를 아이가 갖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나도 내 아이가 이런 공포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이에게 웬만하면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거의 혼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번듯하게 자랐으니 혼나지 않고도 제대로 키울 수 있다.
먼저 화를 내야 할 일과 화내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했다. 밥을 안 먹고 간식을 먹는 것,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 엄마가 바나나 껍질을 깠다고 우는 것(바로 어제 일이다...)은 혼날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를 달래거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이도 저도 안되면 마냥 기다려 해결하려고 애쓴다.(물론 안 될 때도 있지만)
다만 혼낼 일은 확실히 혼낸다. 이것도 최소한으로 단순화시킨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하지 않기!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할 경우엔 호되게 혼을 낸다. 이 대사는 거의 마법의 주문에 가깝다. 이 말 한마디로 모든 행동을 혼낼 수가 있다. 약간 꼼수긴 하지만 내가 아이를 혼내는 것은 이거 딱 하나뿐이다.
부모님께서 나를 키워주신 방식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최선을 다해 길러주신 것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이건 양육방식보다 나의 기질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아이도 나와 비슷한 성격임에 분명하니 더 조심하고 싶다. 아이를 기르는데도 인생의 법칙이 적용된다. 더하기보다 빼기가 먼저다. 무엇을 더 해줄까 고민하기보다 내가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될 일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