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에 진한 커피 자국이 났다. 구겨지지 않게 살살 책장을 넘기던 정성이 무색해지는 순간. 성급한 손길이 원망스럽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책들은 대부분 진하고 옅은 커피 자국들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다. 독서와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 흡사 이름표라고나 할까? 살아온 흔적은 책장을 덮은 커피 자국처럼 숨길 수가 없다.
이 책처럼 지금 나란 인간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두 내가 만들어온 삶의 흔적들이니까. 그래서 매 순간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아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좋은 생각만 하며 긍정적으로 살고 싶지만 부지불식간에 걱정과 불안이 머릿속을 뒤덮는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는 말이 무섭다. 내 인생이 걱정과 불안으로 흘러갈까 다급하게 숨을 내쉰다. 날숨에 모든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도록.
오늘 나는 어떤 자국을 남겼을까. 오늘 하루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너무 심각해지는 것 같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한다. 삶의 의미나 방향 이런 건 너무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건 가끔 해야지 매일 해서는 안 된다. 과부하가 걸리고 마니까.
책을 펴니 커피 향이 기분 좋게 퍼진다. 그래, 후회스러운 커피 자국에도 어떤 낭만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너무 고민하며 살지 말아야지. 걱정이 밀려올 땐 하나만 기억하자. 날숨. 날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