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세 줄만 쓰자.

by pahadi


책을 많이 읽자는 목표와 함께 늘 내 새해 계획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독서일기다. 가끔은 내가 읽었는지도 가물가물해 책을 뒤적여야 겨우 생각날 때가 있다. 아니면 다시 읽고 싶은데 책 제목이 도저히 기억이 안나는 경우라든지, 중고서점에서 책을 골라 계산하려는데 몇 달 전 같은 책을 구매한 이력이 뜨는 경우라든지. 실용적인 목적으로 나에게는 독서일기가 필요했다.


책을 읽고 글로 정리하다 보면 읽을 때는 놓쳤던 새로운 생각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글을 쓰는 것은 기록과 동시에 확장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 좋은 줄 알는 것과 실천에 옮기는 것은 별개에 문제다. 미처 못 읽어 쌓아 놓은 책들과 쌓여있는 집안일, 인터넷에 떠도는 가십거리 등 장애물들에 비해 나의 의지는 턱없이 빈약했다.


하지만 드디어 나의 독서일기가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있는 날이 왔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꽤 희망적이다. 일단 나는 잘 쓰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딱 세줄만 쓰자고 타협했다.


이제까지 내가 실패한 이유는 책이 재미없어서도 아니었고 독서일기를 쓸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목표가 너무 거창했을 뿐이었다. 3은 집단의 최소 단위다. 나에게는 걸음마처럼 아주 가까운 도착점이 필요했다. 두꺼운 한 권의 책을 읽고 세줄을 쓰는 일은 부담스럽지 않다. 미룰만한 일도 아니다. 책의 핵심 주제만 적어도 한 줄이 훌쩍 넘는다. 오히려 세줄이 부족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딱 세줄만 쓴다. 세줄이 넘는다면 덜 중요한 내용을 지운다. 괜히 네 줄, 다섯 줄로 늘어났다가는 세 줄 일기라는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실패가 이와 같지 않을까. 내가 게으르거나 부족한 탓이 아니라 목표를 잘못 세운 것이다. 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우주정복이라든가 세계평화 같은 목표보다 딱 세줄 정도의 목표가 적당하다. 세 줄이라고 무시하지 마시라. 안 가는 것보다 천천히 가는 게 훨씬 멋지다. 꾸준히 가다 보면 그래도 어디라도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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