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바느질이 언제였더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부터 바느질을 즐겨했다. 초등학교 실과시간에 처음 바느질을 배웠을까? 공식적으로는 그때가 처음이었을 텐데 그전부터 바느질을 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손바느질로 열쇠고리도 만들고 인형도 만들었다. 용돈을 모아 인형 만들기 kit를 구입해 그 패턴을 가지고 못 입는 옷으로 똑같은 인형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 텔레비전 위에 테디베어 몇 개가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 봐도 꽤 야무지게 잘 만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의 바느질은 좀 달라졌다. 재미나 시간 때우기가 아닌 살기 위해 바느질을 했다. 바느질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졌느냐. 그건 아니다. 어른이 된 나는 슬픔을 삭히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바느질을 했다. 한 땀 한 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깨끗해졌다. 목표는 오직 이것을 완성하겠다는 것뿐. 별 볼일 없는 한 땀이 모여 무엇인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바느질도 꽤 육체노동이라 잠도 아주 잘 온다.
보통 기분이 우울한 날이면 인형을 만든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조그마한 소품이 좋다. 넘쳐나는 파우치를 더 만들 필요는 없고 귀여운 인형이야 다다익선 아닌가. 대충 디자인을 정하고 쓱쓱 부드러운 천을 오린다. 얼굴을 만들고 팔도 만들고 다리도 만든다. 때론 옷도 만들어 입혀준다. 그중 가장 클라이맥스는 얼굴에 표정을 수놓을 때다. 어떤 표정으로 만들까. 모든 것이 내 자유다.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든 인형들은 지금 내 방 선반에 얌전히 앉아있다. 가끔은 만들고 버려지는 인형들도 있다. 꾸역꾸역 완성했는데(심지어 정말 귀여운데) 그 인형을 볼 때마다 그때의 괴로웠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방 한구석에 있어도 외면하고 외면하다 끝내 버려버렸다. 그 인형들은 걱정인형처럼 내 가슴 아린 기억까지 가지고 떠났다. 고맙게도.
나의 바느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눈이 침침해져 바늘귀에 실 꿰기가 힘들어질 때까지 바느질을 할 것 같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명상 방법이 있을 것이다. 꼭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아야 명상이 아니다. 내게 바느질은 하나의 명상이다.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는 대신 두 눈을 부릅뜨고 천과 바늘을 이으며 무의 세계로 들어간다. 한없이 맑고 투명한 그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