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점은 시작을 잘한다는 것, 단점은 쉽게 그만둔다는 것. 이 장단점의 환상의 콜라보로 나를 스쳐간 취미도 참 많다. 미니어처, 자수, 도예, 재봉틀, 캘리그래피, 수채화등등. 손으로 만드는 것은 대부분 좋아한다.
뭐 하나 꾸준히 한 거 없는 나의 취미의 역사를 돌아보려고 한다. 봄바람처럼 잠깐 스쳐간 이야기이니 정보 전달성 글은 절대 아니다.
1. 미니어처 하우스
어릴 적부터 작고 귀여운 거라면 뭐든 좋아했다.미니어처들을 모으다 보니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낯선 서울살이에서 가장 좋은 점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니어처 만들기를 배우는 건 꽤 비싸 나의 첫 아르바이트비를 오롯이 받쳤다. 작은 집을 만들고 벽난로, 테이블, 의자, 소파 등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재료는 진짜 나무였고 과정도 실제와 흡사했다. 얇은 나무여도 톱질이 꽤 어려웠다. 미니어처 의자도 의자라도 네 다리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다리 하나를 붙이는데도 떼었다가 붙였다가를 반복했다. 공방을 다녀오면 팔과 어깨가 너무 아팠지만 그에 비해 결과물은 초라했다. 결국 미니어처는 사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집 한 채를 끝으로 안녕을 고했다.
2. 자수
자수 열풍은 갈대와 같은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내가 손바느질 경력이 얼마인데! 자수는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작이 반인만큼 동대문에 가서 자수 재료를 완벽히 준비했다. 그리고 나의 스승이 되어줄 책까지. 하지만 자수에 가장 중요한 것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바로 인내심과 꼼꼼함. 한 땀 한 땀이 쌓이고 쌓여 완성되는 자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성미 급한 나는 첫 자수를 새기며 자수와 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하나 더 핑계를 대자면 눈이 너무 침침했다. 성급하게 준비한 색색의 자수실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쁘니 괜찮다.
3. 도예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내는 일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가까운 곳에 도예 공방이 없어서 꾸물거리다가 조금 먼 공방까지 다니기로 했다. 물레는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흙을 길게 말아 올리거나 판모양을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흙을 만지는 것은 상상한 것만큼 기분이 좋았다. 꽤나 체력이 필요했지만 음악을 들으며 흙을 만지고 나면 오히려 상쾌했다. 작품은 8주 과정이 다 끝나고 한꺼번에 가마에 굽는다. 기다림만큼 설렘은 커져갔다. 그릇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공방에 갔는데 내가 만든 그릇이 몇 개 없었다! 그릇을 만들 때 흙의 두께를 균일하게 다듬어야 가마에서 깨지지 않는데 내 그릇은 반 이상이 깨지거나 금이 가버렸다. 하나하나 정성껏 만든 것인데 보지도 못하고 헤어졌으니 실망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렵게 상봉한 그릇들도 문제는 많았다. 가마에서 구우면 크기가 많이 줄어드는데 그 효과는 생각보다 꽤 드라마틱해 물컵으로 만든 것이 소주컵이 되어버렸다. 이 우여곡절 속에 연필꽂이만 잔뜩 얻고 도예를 접었다.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꼭 다시 해보고 싶다.
4. 재봉틀
옷을 참 좋아한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옷을 살 수 있는 것도
꽤나 행운이다. 소재가 마음에 들면 디자인이 아쉽고, 디자인만 보다 보면 금액이 부담스럽다. 결국엔 '내 맘대로 만들어 입으면 되잖아'라는 무모한 생각으로 이어졌고 재봉틀에 콘센트도 안 꼽아 본 나는 무작정 재봉틀부터 샀다.
몇 개월 동안 먼지만 쌓이다가 억수같이 비가 오던 어느 날 집에 갇혀있던 나는 재봉틀이나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처음 재봉틀을 만졌다. 독학으로 시작해 옷을 만들기까지 나의 무모함이 가장 큰 도움이 됐다. 무작정 만들다 보니 옷 모양이 되긴 됐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만든 원피스를 입고 나가는 것을 극구 말리셨다. 바보 같아 보인다는 엄마의 간절한 조언에 따라 결국 모두 잠옷이 되었다. 연필꽂이 부자에 이어 잠옷 부자가 되었다.
이 정도 시간, 노력, 비용을 들였어도 자랑할 만큼 깊이 있는 취미 하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모두 재밌었다. 끝까지 한 건 없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는 성미 덕에 하고 싶은 건 대부분 하며 사는 것도 만족스럽다. 조금씩 손대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 꼭 맞는 취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