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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Apr 09. 2017

불안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연애소설 주제에 철학적인 진행방식이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이름도 '보통' 이라니, 왠지 친근하고 재밌고 혼자 의미 부여하면서 낄낄.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의 지위와 그를 추구함에 있어서 실패했을 때 우리가 갖게 되는 불안감. 또는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거나 지위를 잃을 때의 불안감에 대해서 원인과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고, 작가와 제목만으로 선택했는데 사실 '지위'와 관련하여 풀어낸 책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서 다소 신기했다.


그래서 뒷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은 도입부가 꽤 중요하다. 원인, 해법 두 장으로 이루어진 본문에 앞서 '정의'라는 단락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먼저 설명하고 있다.

지위
-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지위status는 신분이라는 라틴어 statum에서 파생되었다.
- 좁은 의미에서 이 말은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을 가리킨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가리키며, 이 책에서는 이 의미가 더 중요하다.
- 사냥꾼, 투자, 유서 깊은 가문, 사제, 기사, 다산하는 여자 등, 높은 지위를 부여받는 집단은 사회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다가 서양에서는 177년 이후 경제적 성취와 관련하여 지위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 높은 지위는 즐거운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에는 자원, 자유, 공간, 안락, 시간이 포함되며, 남들에게 먼저 배려받고 귀중하게 여겨진다는 느낌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의 초대, 아첨, 웃음, 경의, 관심을 통해 당사자에게 전달된다. (... 중략)

지위로 인한 불안
-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 중략)
-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도로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 중략)
-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명제
-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 지위에 대한 갈망은 다른 모든 욕구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있다. 이것은 자신의 재능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자극하며, 남들보다 나아지도록 고무하며, 남에게 해를 주는 괴팍한 행동을 못하게 억제하며, 공동의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사회 고성원들을 결합한다. 그러나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이 갈망도 지나치면 사람을 잡는다. (... 후략)


지위로 인한 불안이 자기 자신의 자아상, 스스로 느끼는 존엄,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존중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 얼마전에 읽은 '자존감 수업' 을 읽고 들었던 생각의 연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위를 가진 사람은 관심과 사랑을 더 많이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지위를 가지지 못한 것에 열등감을 갖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성취와 지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신분과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졌다고 믿게 된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제적 성취에 실패했다는 것은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p.247


작가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지위에 대한 갈망과 그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 이 책을 읽은 것은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취한 어떤 것은 사실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다른 성취 거리에 눈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뿐. 현대의 능력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지위 따위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울고 웃고 연연해야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러니까 뭐시냐, ..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안주할 것도 없고 괴로워할 것도 없고. 신경쓸 것도 연연할 것도 없고 내 페이스대로 가자고. 모르면 모르는대로. 하지만 남의 정답이 내 정답인 것, 그것만은 절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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