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of the year
사실 2019을 마무리하며 올해 초에 이 글을 썼는데, 어영부영 하다보니 글 오픈을 못 했다.
숙제처럼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2020 년을 정리하는 글을 쓰기 전에 마지막 숙제로 글을 오픈해둔다.
사실 올해(2019년)가 어떻게 갔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정신 못 차렸던 기억 밖에.
올해의 실수 | 약속 바람 맞히기
그래서 아마도 처음으로, 약속 시간을 까맣게 까먹어서 상대를 바람 맞힌 사고가 있었다. 살면서 다양한 종류의 허탈한 실수를 하곤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약속 시간을 넘겨서야 생각이 난 케이스는 없었는데, 마침 핸드폰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아서 연락도 받지 못해서 걱정을 시키기까지 ㅠㅠ 스스로 생각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어서 매우 곤란했고 미안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을 왜 까먹었냐 하면, 계획되었던 회의와 계획되지 않은 회의가 오후 내내 잡혀서 회의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버려서야 시간을 확인하게 되었고, 약속 시간을 맞추려면 칼퇴를 했어야 했던 것. 상대방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인 건 당연한 거고, 내가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보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주의력의 한계를 넘어선 상황이 되어버렸던 탓이 아닌가 싶다. 올해는 그렇게 아슬아슬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줄타기 상태였다.
올해의 운동 | 필라테스
그 와중에 너무 잘한 일은 운동을 시작한 일. 지금 회사에 다니기 전, 첫 회사에서 이직을 고민하며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게 요가였는데 한동안 잘 다니다가 요가 선생님이 자꾸 바뀌면서 운동이 맞지 않게 느껴져서 그만뒀다. 작년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요가 클래스 중에 필라테스 매트 수업이 좋았던 게 생각나서 '필라테스를 시작해봐야지', '학원을 알아봐야지'라고 말만 하고 다니다가... 아침마다 몸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질 때서야 겨우 정말로 필라테스 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 약 6개월 넘게 매주 2회씩 1:1 레슨과 + 그룹 레슨을 섞어서 받고 있는데 지금은 너무 만족하고 있는 상태다. 운동을 시작할 무렵이, 아무것도 안 하는데 체력이 바닥나서 손하나 발하나 까딱하기도 힘들게 느껴지는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그 상황이 극복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그때만큼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만족스럽다. 식이 조절은 안(못) 했는데도 인바디 체지방과 근육량 지표도 개선되었고. 물론 처음 필라테스를 시작했을 때는 진짜 근육이 1도 없는 상태라서 운동하고 나면 며칠 동안 헤롱 거려서 낮에 일하는데 지장을 줄까 봐 걱정할 정도였고 그런 불편한 증상이 사라지는데 2개월은 걸렸다.
운동을 꼬박꼬박 가고 있는 것은 역시 일단 비싼 레슨비를 미리 지불하고 보니 -ㅁ- 몸이 저절로 가지는 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그리고 회사일에서 정신 못 차리고 머리가 복잡한데 몸이라도 힘든 시간을 억지로라도 갖는 건 리프레쉬에 도움이 되긴 하는 것 같다. 1:1 레슨비가 비싸긴 하지만 당분간은 지금의 운동 패턴을 유지해볼 생각. 나이를 먹으니까 생존을 위해서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ㅁ-
올해의 힐링 | 12월의 네스트 호텔
지난주에 호캉스라는 걸 처음 가봤다. 2박 3일 동안 호텔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닥거렸다. 해외여행을 가도 휴양지보다는 관광지로만 다니는 편이라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네스트 호텔에는 야외 수영장이 온수풀로 이용되고 있어서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마시면서, 온몸은 뜨뜻하게 김이 모락모락 한 사치(겨울에 야외에 있는 뜨거운 물을 계속 데워서 온도를 유지한다니!!! 온천수도 아니고 -ㅁ- 정말로 비효율적이고 사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를 즐겼다.
근처에서 맛있는 걸 찾아 먹고, 나머지 시간엔 온전히 침대와 소파에 누워 책을 읽었다. 그저 평소 집에서처럼 노닥거리면서 책을 읽을 뿐인데, 일상의 공간이 아닌 곳에 있으니 회사 생각이 덜 나서 좋았다. 평소라면 책을 읽다가도 온갖 회사 생각이 자꾸만 연상되어서 그럴 때마다 큰 숨을 쉬곤 했는데.. 네스트 호텔에서 보낸 호캉스가 기분 좋은 시간이었어서 아마도 그곳에 다시 그런 시간을 보내러 갈 것 같다.
올해의 사건 | 감투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회사일에서 정신이 없는 이유는 올 초에 처음으로 자그마한 공식적인 책임을 맡았는 데다가 회사가 격변하는 상황에 빠지기까지 해서 일복이 터졌기 때문이다. 책임을 가지는 역할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죽도록 피해만 다녔는데 더 이상 도망치면 비겁한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제는 이름 있는 역할을 맡지 않더라도 어차피 시니어로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므로 무게는 똑같다는 말에 설득되어서 주어진 미션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한 감투를 과하게 셀프 의식해서인지, 그게 아니더라도 일복이 터져서인지,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신 못 차리는 한해를 어찌어찌 보냈고 내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년은 올해보다는 더 잘해야 될 텐데라는 생각 반과 내 한계를 인정하고 욕심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반.
올해의 쇼핑 | 아이패드 프로
아이패드로 리디북스로 책 읽고 넷플릭스랑 티빙 보고 게임하고, 또 책 읽고 동영상 보고 게임하고, 또 책 읽고 동영상 보고 게임하고 ... 아이패드 초기 버전을 써보고 여태 쉬었다가 오랜만에 다시 샀는데 너무나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왜 이제 샀지 -ㅁ-
올해의 더위 | 2월의 호주 사막 울룰루
겨울이니까 괜히 더 생각이 난다. 올해 2월에 호주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엄청 뜨거웠던 호주 여름 사막 울룰루에서 캠핑 투어를 했다. 창렬 하는 태양 아래서 파리와 싸우면서 걸었던 정말 덥고 덥고 덥고 더웠던 뜨거운 기억. 평생 한번쯤 해볼 만한 경험, 나 스스로 다시 가려고 결정할 일은 없을 것 같은 ... 그래도 자꾸만 기억이 난다. 사막 야영장에 침낭을 깔고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봤던 기억도.
올해의 미식 | 스시 오마카세
난생처음으로(이 나이가 먹어서야) 스시를 한 끼 제대로 먹어봤다. 회나 초밥, 익히지 않은 해산물은 비위가 상해서 못 먹는 편이어서 나는 스시를 못 먹는 사람이라고 평생을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한 번쯤은 제대로 된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청담동 스시 쿠루미라는 고급진 스시집을 큰 맘먹고 방문하게 됐다. 런치가 10만 원도 넘는 오마카세였는데 스시가 30개쯤 나왔다. 고등어랑 성게알을 제외하고는 모두 먹을만해서 뿌듯했다. 먹을만한 스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안심이 되었지만, 역시 같은 가격이면 고기를 먹으러... -ㅁ-;
새해의 목표는 지치지 않는 것.
모두 다 해내고 "하얗게 불태웠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또.. 욕심부린다.....)
참고: 2018년의 올해의 땡땡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