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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Jan 02. 2022

삶으로서의 일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

'워라밸'이라는 개념이
우리 삶의 3분의 1을 나머지 3분의 2와 대치시킬 뿐만 아니라
그 3분의 1(즉 '일')을 불쾌한 것으로,
심지어 필요악으로 기정 사실화한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는다.
(적어도 은퇴하거나 죽을 때까지)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가든지,
아니면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는 수밖에 없다.


워크-라이프-밸런스 라는 용어는 '워크와 라이프는 다른 것'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고,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워라밸을 추구한다'는 것에는 살짝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워크가 라이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양새를 지지하는 것은 절대로절대로 아니다-_-). 나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내가 일 하는 시간을 내 인생이 아닌 것으로 제외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랄까.  워크 라이프 (일하는 삶의 시간)와 플레이 라이프 (노는 삶의 시간)라고 구분한다면 말이 되겠지만.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저자가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점이다.

우리는 일어나서 일하러 가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일에도 삶의 다른 측면들에 대해 요구하고 갈망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참여와 사람, 친밀함을 요구해야 한다. 일은 삶에서 친밀하고 실존적인 부분이다. 우리가 아무리 다르게 생각하도록 스스로를 설득해봐도 일은 우리에게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일은 '그냥 일'이 아니라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p.47 <1장. 직장 밖의 나만이 진짜 나인가> 중에서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이후 사람들은 일하는 사람이 삶에서 기쁨을 찾을 방법은 워라밸뿐이라는 생각을 주야장천 밀어붙였다. 그러나 해당 기간 동안 일 때문에 병에 걸리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똑같은 방법을 더 많이 써봤자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중략) 흥미롭게도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압박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28퍼센트의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에 스트레스 요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3분의 1은 스트레스 때문에 직장에서 생산성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윌리스 타워스 왓슨에서 실시한 다른 조사 결과를 보면  밀레니얼 세대의 61퍼센트가 평균 이상 혹은 높은 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해당 수치는 33퍼센트, X세대의 해당 수치는 50퍼센트인 것과 비교된다.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

저자는 '만족' (욕구가 충족되면 만족한다) 이나 '행복'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맞아 들어가는 경험. 비일상적이기 때문에 늘 행복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다 '의미' 를 추구해야 하며, 삶의 예측 불가능성 앞에서는 스스로 부여한 삶의 의미만이 때때로 발생하는 슬픔과 스트레스를 견디고 대처해서 (생물학적/경제학적으로) 실존적인 면역 시스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의 문제

이미 많은 물질적 안정을 누리고 있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육은 사람을 빨리 돈을 잘 버는 존재가 되도록 하는 교육으로 치우치고 있을 뿐, 인간성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을 양육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 상 유래 없이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데도 우울증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우울증이 전 세계 질병 부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라고 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돈을 벌려고 서두르는 것은 철학적으로 거의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다가 결국 시간은 없고 삶의 질은 더 낮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렇게 살고 있다.
-p.51 <1장. 직장 밖의 나만이 진짜 나인가> 중에서


자기 인식

우리는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남들이 탐낸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탐내게 된다. 그래서 그것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갈망이 되고 이 쳇바퀴가 더욱 견고해진다. 우리는 인정과 보상을 갈망하지만 이런 갈망은 문화와 양육과정에 스며든 덕목, 도덕, 이상의 산물일 수도 있다. 빨리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모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죽기 직전의 사람들에게 '일을 덜 할 걸'이라는 후회가 가장 많다는 건 무슨 뜻일까.


자기 통찰은 자기 인식을 낳고,
자기 인식은 자기 가치를 만들며,
이는 자기 존중으로 이어진다.


자기 존중

종종 크게 성공할수록 그처럼 힘든 세월을 견뎌내고 얻은 고참이라는 지위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커지는 경우가 많다. 성공은 더 큰 성공에 대한 욕구를 낳는다. (중략) 궁극적으로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내 행동의 총합이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지식과 내가 매일 하는 일이라는 현실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하려면 자기 존중이 필요하다.
-p.83 <2장.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중에서

일을 그만두고 싶은데도 단지 지위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하고 싶은 행위를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존중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내가 원하는 일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기 존중이며 이것이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일은 삶이다. 전지적 회사의 오너 시각으로 '삶의 시간 전부를 일에 쏟으라', '여가 시간에도 업무를 대응해라' 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도 삶의 일부 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을 '진짜' 삶을 멈추고 감정이 개입할 수 없는 냉정한 시간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여가시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과 친밀감이 가득찬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3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4장. 우리는 일터를 사랑할 수 있을까

5장. 의미 있는 일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에서 저자는 일터에서의 관리자의 덕목에 대해서 언급한다.


일에 관한 모든 논의는, 그리고 무엇이 그날그날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기쁨과 의미를 주는가에 관한 모든 논의는 보통 직속 관리자와 가장 먼저 연결된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날그날의 업무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사람들이 직장을 옮기거나 옮길 생각을 해보는 주된 이유의 하나로 잘못된 경영을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원은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관리자를 떠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p.102 <3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에서

앗, 이런. 이 책에서 얘기가 갑자기 이쪽으로 튈 줄은 몰랐다.


관리자로서 당신은 직원들의 삶에서 상대적으로 큰 덩어리를 손에 쥐게 된다. 당신은 직원들이 병들지 않게 할 책임이 있으며, 이상적으로는 그들의 삶이 의미 있어지게끔 도와줄 책임이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둘 때 당신의 리더십이 끼친 영향을 가장 크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것은 당연히 그 누구도 당신 밑에서 일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p.109 <3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에서


일터에서 관리자의 책임

2021, 올해의 땡땡땡 에 썼지만, 최근 4년간 나의 일은 매년 큰 변화가 있었고 내가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매니저와 리더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매년 더 넓은 범위의 역할을 맡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직도 답을 찾는 과정 중인데...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뼈를 맞는다. 누구도 우리 조직에서 일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게 하는 것 이라니.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요구받았다.


저자는 어느 날 우연히 한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을 조사한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일을 덜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꼽힌 것(베스트 5)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자기의 조직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이 기간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일이 없게 만들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철학 교수이자 경영인인 저자는, 경영자로서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고민해서 풀어내고 있다.


의미 있는 방식으로 직원들을 관리하려면 일이 실존적이고 친밀한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우리가 직장에서 사용하는 시간은 다른 여느 활동에 사용하는 시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대화는 승진에 필요한 직업적 발전을 평가하려는 커리어에 관한 대화여서는 안 된다. 이 대화는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는 두 개인 사이의 대화여야 한다. 시작점은 착취가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조직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진심으로 느껴야 한다
 -p.166 <5장. 의미 있는 일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중에서


일은 실존적 출발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뿐인 내 삶의 실존적 방향이 조직의 그것과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혹은 조직이 잘 정의된 의미 있는 경로를 벗어나는 중이라면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사실 일이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조직을 위해서도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중략)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남은 길은 떠나는 것뿐이다. 방향을 바꿀 의지나 용기가 없다면 혹은 저항이 너무 크다면 우리가 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p.193 <7장. 충성이냐, 반란이냐> 중에서


사실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이라는 부제를 보고 일종의 자기 계발서일 거라고 생각하고 읽은 책이었는데, 워라밸 이라는 사회 현상에 대한 고찰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인문교양서라고 분류해야 할 것 같다. 책이 얇고 철학 얘기는 그렇게 깊게 다루지 않아서 적절하게 생각하면서 읽어볼 만한 책. 책의 중반부터는 일터의 관리자의 책임에 관한 얘기가 주로 다뤄져 있어서 조직장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더 추천하는 책.


죽기 직전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누구도 말문이 막히거나 횡설수설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 높은 연봉, 거창한 직책명,
차량 지원, 스톡옵션을 포기해야 한다면 포기하라.
의미 있는 삶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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