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그럼에도 여전히 뭔가 좀 이상했다. 궁극적으로 이런 대학과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을 위해 맞춤 제작된 많은 일자리가 특정 학문의 자질과 지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과거의 일자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드러커조차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았다. 1979년 드러커는 지적인 사람들이 지루한 업무를 맡고 나서 자신이 지나친 교육을 받았음을 깨닫게 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대단한 '지식인'이 되리라 기대했던 자신이 일개 '직원'일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 <1장 지나친 노동량> 중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해줘야 하는 신기술은 사실상 우리를 점점 더 옭아매왔다. 세탁기로 많은 양의 빨래를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집안일이 더 편해지고 여가 시간이 늘어나야 했지만, 실상은 어떤가? 한 달에 한 번 옷을 빠는 대신 매일 빨아야 한다. 마차보다 훨씬 빠른 자동차는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점점 더 먼 거리를 오가게 만들며 운송에 더 많은 시간을 쓰도록 했다. 편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신속한 온라인 이메일 덕분에 시간이 대폭 절약되는 듯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과거에는 편지를 쓰기 위해 하루에 몇 분 내지 몇십 분을 썼다면, 지금은 시시각각 이메일함을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으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었다. 가속화에는 역설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를 해방시켜 주리라 기대했던 기술은 결국 더 많은 일을 만들어냈다.
- <3장 노동의 본질과 변화> 중에서
만일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10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10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일에 25시간이 주어진다면 놀랍게도 그 일은 결국 25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기만적이거나 의도적으로 속이려 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업무는, 써야 하는 시간에 비례해 중요성이 증가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 <4장 가짜 노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이 대목에서 작가의 의도와 반대의 의미로 문장의 내용에 매우 동의했다. 같은 업무라도 결과물의 질은 다를 수 있고, 결국 복잡한 결과물을 만들려면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할 텐데... 작가는 적은 시간을 쓰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적은 시간만 쓰는 게 맞고, 더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면 가짜 노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의심하면서 책을 계속 읽어가 본다.
카라 뉴포트에 의하면 회사들은 수십 년간 '연결', '시너지', '합동 창조' 같은 발상을 수호해 왔고, 그것이 문화를 형성해 우리에게 언제나 타인의 일을 분열시킬 권리가 있다는 관념을 은근히 심었다. 이는 유혹적인 합리화다. 우리는 그 지령에 스스로를 종속시키며 이런저런 기술들, 즉 이메일, 채팅, 휴대전화, 잦은 회의 그리고 칸막이 없이 탁 트인 사무실 등을 사용한다. 그런 사무실에서 우리는 동료들이 수다 떨고 기침하고 전화받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언제든 질문이나 일상적인 첨언으로 방해받을 수 있다.
- <9장 무의미한 노동시간 줄이기> 중에서
IT기업에서 칸막이 없이 트인 사무실은 당연하고 언제나 모든 것에 신경 쓰고 방해받을 수 있도록 열린 자세는 지향해야 할 가치인 줄만 알았는데, 이게 얼마나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는 생략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노동자가 만들어낸 완성품에 대해서 돈을 지급받았지만 산업 시대 이후 노동자는 자신이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았다. 많은 변화와 효율성의 척도가 여기서 흘러나왔고 노동을 시간으로 계량하는 관습을 형성했다. 오늘날까지도 목수나 컨설턴트가 직장을 구하려 할 때는 여전히 투입할 노동시간에 대해 급료를 받는다. 다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바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효율성으로 인해 소요된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 생산물의 가치가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생산물의 가치는 거기에 투입된 시간에 의해 정의된다고 애덤 스미스가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 <10장 노동시간에 대한 관념 버리기> 중에서
페퍼에 의하면 경영 컨설턴트와 경영 철학 산업 전체가 사실상 오락 산업이었다. 회사 내 실제 긍정적 변화보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영감을 받고 열정적으로 바뀌었는지로 성공을 평가하는 산업이었다. 연구들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경영학 과정은 개인 아니 회사나 업계에 아무 실제 효과가 없었다.
- <14장 관리직을 위한 의미 있는 조언들> 중에서
효율성과 고도화를 추구하며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일이 만들어내는 실제적인 가치와 본질에 관련된 일보다는 일을 관리하고 기록하기 위한 부수적인 일들이 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잘못된 시스템이나 관리 구조에 갇혀 아예 무의미한 일도 생겨나게 된다. 이런 일들을 이 책에서는 가짜 노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관리하고 기록하기 위해서 모든 일들은 관리 가능하고 기록 가능하게 구성하도록 강요받을 뿐 아니라, 관리가 불가능하고 기록이 불가능한 일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장에서는 과정이나 시간보다 실질적인 가치로 결과를 평가해야 하며 관리 감독하기보다는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한 개 단위에서 또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난다. 그래서 조직이 생기고, 더 큰 조직이 생긴다. 조직으로 위계와 단위를 나누어 큰 일을 쪼개면 복잡한 일도 해낼 수 있다. 나는 이 단계와 과정에 동의한다. 내가 어떻게 오롯이 혼자서 샘에서 물을 긷고 정화하고, 논에 벼를 길러 쌀을 생산하고, 가스를 구하고 불을 지펴 밥을 해 먹겠는가. 물질적인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의식주와 관련된 일뿐이 아니다. 고도화된 오락과 외로움 해소를 위한 SNS 애플리케이션도 혼자 만들어 내서 공급하고 소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삶의 실질적인 가치와 거리가 먼 것 같은 일들도 필요해진다. 나는 그래서 규모가 큰 시스템과 개개인이 알 수 없는 과업의 관리의 존재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관리를 위한 관리, 관리만을 위한 실제 가치 생산 과업보다 훨씬 덩치가 커진 부수적인 과업, 관리되지 않는 단위 과업에 대한 경시도 분명히 존재하게 되었고, 책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슨 뜻인지는 알겠고 동의되기도 한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데 그 사이의 균형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려운 것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만 관리하고, 관리나 측정될 수 없는 것은 자율과 신뢰로 맡겨서 동작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만약 가짜 노동 같은 일이 최소한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내가 하는 일은 가짜 노동과는 먼, 생산의 가치와 본질에 가까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