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경영 season 1_13
예전에 차를 즐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테이블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그 사람은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타원형으로 얇게 자른 넓은 나무받침에 여러 다기들이 있었고, 고급 보이차를 손으로 떼어내어 주전자인 다관에 넣고 우려낸 다음 숙우(차를 식히는 큰 그릇)에 부운 다음 내 앞에 놓인 작은 다기 잔에 따라주었다.
차를 마셔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작은 다기잔은 한 모금 마시면 끝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모금 마시면 바로 차를 따라주고, 따라주니 또 안 마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작은 다기잔안의 차를 조금씩 나눠 마시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차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셨는데, 두세 잔 마시고 나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다기 잔을 들게 되었다. 그 사람과의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뜨거운 물을 붓고 차를 우려내고, 숙우에 다시 차를 식혀 작은 다기잔으로 옮기는 일련의 과정을 보는 것 또한 사람간의 어색함을 없애고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만든 것도 같다.
내가 마신 보이차(普洱茶)는 흑차(黑茶)라고도 하는데 미생물에 의해 발효가 진행되는 후발효차로 중국 운남성의 운남보이차가 유명하다고 한다.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맛과 향이 깊어지며 부드럽고 순하다.
차 맛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당시 금색 종이에 싸서 보관하고 있던 둥그런 보이차를 조금 잘라 다관에 넣던 그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깊은 향과 부드럽고 순한 차의 미감과 그 날의 분위기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차를 몇 잔을 마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어나려고 보니 이미 몇 시간이 지나 있었다.
밥을 먹고 선방에서 잠깐 차를 마시었는데
산 중턱의 붉은 해가 벌써 서쪽으로 비끼었네.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팔월이일」중에서
그날 이후 그 작은 다기잔이 가끔 생각난다. 만약 큰 잔에 한가득 차를 내줬으면 어땠을까? 천천히 식혀서 조금씩 마셨겠지만 차의 깊은 향을 소소하게 음미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바닥이 보이게까지 다 마시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 날 내가 마신 차의 양은 대 여섯 다관이었던 것 같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수 리터의 차를 마셨다. 머그컵으로 마셨더라면 결코 마실 수 없는 양이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차를 마시라고 계속 권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날 목이 말라 계속 차를 마셨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다기잔의 위력이었던 것 같다. 한 모금에 마실 수 있는 작은 다기잔을 마시다보니 나도 모르게 많은 양의 차를 마신 것이다.
부자경영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큰 부자가 되고자 하는 최종 목표만 생각한다면 그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칠 수도 있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물론 성공에 대한 큰 그릇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그 그릇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작은 찻잔에 물을 여러 번 담아 옮기는 작은 성취의 경험이 쌓고 쌓아간다면 어느 순간 그 큰 그릇이 가득 차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 믿는다.
부자가 되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만의 작은 실천을 추진하고 또한 그 안에서 차를 마시듯 향기를 음미하고 한 모금씩 마시는 행위 자체를 그냥 즐기고 이어나간다면 어느새 내가 생각한 부자경영이 완성된다.
차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그 작은 다기잔을 보며 감질 맛나고 너무 작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차를 마셔 본 사람은 그 작은 다기잔의 위력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나의 부자경영 선반에 놓인 작은 성공의 차를 우려내어 다기잔에 채워 그 향과 맛을 음미하며 즐기면서 마셔보면 어떨까?
글|백 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