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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May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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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도망치고 말았다


 어떤 회사의 정규직이 하기엔 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일을 하는 곳, 그러나 정작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연발하는 곳, 그곳이 바로 콜센터다.


 - 콜센터상담원,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이번에는 버티고 싶었다. 숨이 막히고 극도의 불안감이 내 머릿속을 잠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팀장의 질책들이 칼처럼 꽂혀 들어오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 내 미숙한 일처리로 팀장은 ‘담당자를 바꿔달라’는 민원을 받아야 했고 고객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팀장은 내게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매주마다 어설픈 안내로 담당자를 바꿔달라는 클레임을 받았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내 말투와 안내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통화 녹취를 다시 들어볼수록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언어장애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콜센터 상담사의 말씨가 어눌하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나 역시 왜 내가 여기서 상담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뽑혔으니까, 돈 벌어야 하니까 출근했을 뿐이다. 하지만 돈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은 프로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말씨가 어눌하다면 몸 쓰는 일을 하면 되지 않나?’ 생각도 했지만, 나는 몸짓도 느렸다. 느린 동작으로 식기세척 공장에서 해고당한 뒤, 몸 쓰는 일을 피해 선택한 일이 콜센터였을 뿐이다. 콜센터는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사무 직종이기 때문이다. 앉아서 일을 하면 덜 피로할 거란 생각은 내 오산이었다.


 콜센터에서 상담사를 피로하게 만드는 건 고객뿐만이 아니다. 통화를 마치고 문자로 나가는 통화 만족도는 내 삶의 만족도 역시 낮춰놓았다. 통화 만족도나 전산 처리 과정을 환산한 점수는 고스란히 내 실적이 된다. 내 실적은 팀의 실적이 되고 도급업체의 실적이 된다. 원청은 그 실적을 가지고 도급업체들끼리 경쟁을 시킨다. 경쟁에서 밀려난 도급업체는 다음 계약에서 불이익을 얻거나 심하면 도급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다. 콜센터의 관리자들이 실적을 가지고 상담사들을 압박하는 이유다.


 그러니 상담사는 고객, 관리자, 도급업체, 원청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착취 구조는 상담사들의 목을 조른다. 심지어 나는 실적도 낮고 클레임도 매주마다 받는 상담사였으니 오죽할까? 당연히 집중 관리 대상이 될 수밖에.



 그날도 어김없이 사건사고가 터졌다. 또 담당자를 바꿔달라는 클레임을 받은 것이다. 팀장은 내게 고객한테 아웃바운드를 나가기 전에 검수를 받으라고 했다. 검수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리하는 상담사가 많으니 오래 걸릴 수밖에. 나는 검수를 보내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 좌우에서는 동료 상담사들이 업무를 하고 있었다.


 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이는 내게 일을 주지 않겠다는 신호로 다가왔다. 검수를 보내고 나는 하염없이 대기 중이었다. 일분일초가 가시방석인 시간. 팀장은 나를 불러서 어김없이 화를 냈고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일분일초가 느리게 흘렀다. 내 숨은 점점 막혀오기 시작했다. 자리에 돌아와 부랴부랴 약통을 찾았지만 안정제는 없었다.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앉아 크게 심호흡을 해댔다. 심호흡을 하면서 불안과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돌아가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일분도 못 버틸 거면 돌아가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럼 남은 방법은?


 도망.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비상계단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폭탄 제거하듯이 전화기를 껐다. 또 실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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