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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May 10. 2022

휴대폰 결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돈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돈을 내 밑에 두고 부릴 수 있어야 한다.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하고 나를 위해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와 정반대의 관계를 맺고 있다. 더 많은 돈을 모으려고 나를 위해 돈 한 푼 쓰는 데도 절절매거나 돈을 불리기도 전에 가치 없는 소비로 돈이 술술 새어나가게 한다.

- 정은길, 「돈말글」



 통장 잔고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휴대폰 요금과 월세를 내고 나니 5만 원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다음 급여가 들어올 때까지 이걸로 2주, 정확히는 2주 반 정도를 버텨야만 한다. 5만 원으로 2주를 버티라니!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설마 못 버틸까 하는 심정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첫 주는 그런대로 버텼다. 콜센터 구내식당에서 쓸 식권을 사고 집에 남아 있는 즉석식품을 활용했다. 돈을 하루도 쓰지 않은 날도 있었다. 계획적이지 않은 내 소비 습관도 어느 정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는 듯했다.


 문제는 그다음 주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요요 현상처럼 소비(특히 음식)에 대한 충동이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었고 카페에 가서 디저트도 한 움큼 집어오고 싶었다. 심지어 집에 남은 즉석식품도 떨어져 갔다. 마치 랜섬웨어에 감염된 것처럼 내 머릿속은 충동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돈이 없는데.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한 후로 내겐 빚을 만들 창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카카오뱅크의 비상금 대출, 햇살론 등 상환해야 할 금액이 많았으니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2-3 금융권에 채무를 지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마지노선이었다. (그래도 너무 뭐라 하지 말아 달라. 돈 없고 집 없고 직업 없는 것도 서러운데.)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해 괴로워하던 내게 한 가지 묘안이 눈에 들어왔다. 뉴스를 보다 ‘휴대폰 소액 결제’란 일곱 글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 바로 그거야! 뉴스의 내용은 휴대폰 소액 결제 피해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휴대폰 결제로 밥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황급히 배달 앱을 켰다. 휴대폰 결제 창을 누르고 입력정보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름, 주민번호, 휴대폰 번호, 통신사, 인증번호까지. 동의 버튼 누르고 결제만 하면 끝… 난 줄 알았는데, 결제가 거부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뭐? 결제 거부? 왜? 설마 이것도 내 신용이 문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다행히도 신용 문제는 아니었다. 심지어 쉽게 풀 수도 있었다. 처음 휴대폰을 조작할 때 내가 휴대폰 결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설정한 탓이었다. 과거의 나를 칭찬해야 할지 비난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었다.


 첫 휴대폰 결제로 무엇을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로 대략 30만 원어치의 배달음식 주문과 마트 주문을 했는데, 그게 벌써 지난달 하반기에 있었던 일이다. 남은 일은 하나, 휴대폰 요금과 합산되는 결제 금액을 이번 달의 내가 잘 막길 바라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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