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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Apr 23. 2022

대학동에서

고시생은 아니지만


 열심히 살수록 가난해진다.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계급 상승’이니 ‘성취’니 하는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적어도 서민 이상이 되어야 품을 수 있는 삶의 목표다. 이곳에 사는 이들의 목표는 상향이 아니라 하루하루 밀려나지 않는 것뿐이다.

- 이혜미, 「착취도시, 서울」




 나는 뜨내기다. 그건 지금 나랑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년과 중년이 섞여 있지만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은 남자들이다. 우중충하면서도 차분한 곳. 뜨내기들 중 원해서 이곳에 온 사람은 거의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둘로 나뉜다. 싼 값에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준비한다거나. 혹은 둘 다 일지도.


 때문에 이곳의 가게들은 다른 동네의 가게보다 싼 가격에 운영된다. 특히 고시식당은 주머니가 가벼운 고시생들의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진다. 묶음 단위로 식권을 사거나 월 단위로 식대를 선결제하지 않아도 이곳의 한 끼는 5천 원이면 충분하다. 나 역시 식권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식사도 가성비 있고 나름 괜찮았다. 집에서 차려먹는 것보다 품도 비용도 덜 드니까.


 고시식당은 이용자가 직장인이 아니란 걸 빼면 회사 구내식당이나 공장단지의 한식뷔페랑 같다. 처음에는 허름한 차림에 생기를 잃은 사람들은 보고 거부감을 느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그것은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지긋지긋해도 살려면 먹어야 한다. 빈 접시에 제육볶음을 가득 퍼담은 내게 존엄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퍼먹을 뿐이었다. 먹는 행위만큼 일차원적이고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게 있을까? 밥을 먹을 때만큼은 삶이 주는 고통이나 번뇌를 잠시 잊을 수 있다. 게다가 눈치 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이것이 내가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갔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한 층에 일곱 세대가 몰려 있는 층이 나온다. 혹시 불법으로 쪼갰나 싶어 건축물대장을 떼어봤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집이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이라는 것.


 알고 보니 이 동네는 근린생활시설로 지어놓고 원룸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생각에 원래 용도는 고시원이었을 것 같다.) 그 수많은 집 구하기의 풍파를 겪고도 등기부등본 하나 떼어보지 않은 내가 싫었지만, 애초에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당시 내 마음은 급했고 5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는 내 모든 짐을 풀 수 없었다. 이번에는 전용 면적이 20제곱미터가 넘는 곳이 최소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쓸 때 내게 유리한 특약을 넣는 것, 그게 내 마지노선이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침대가 옵션으로 딸려 있다는 것이다. 침대! 싸구려 토퍼에 누워 침대 생활을 얼마나 그려 왔는지! 언제 다른 곳으로 뜰지 모르는 뜨내기에게 침대는 옮기기 부담스러운 가구니까. 침대가 생기고 나서야 나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침대 최고야.


 고시생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애초 목적이 고시원이었던 건지 이 건물에는 묘한 고시원 분위기가 있다. 공용으로 쓰는 전자레인지, 세탁기가 있고 빨래건조대도 계단층 사이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이게 고시촌 인심인 걸까? 그게 뭐가 되었든 지금은 상관없다. 더 이상 빨래건조대와 나란히 눕지 않게 되었으니까.



 사실 이 동네로 오면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구직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나를 무너뜨렸고, 심리적 고립감은 극단적인 생각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때마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본가의 형편도 안 좋아진 시점이었다.


 허리띠를 졸라 매야 했다. (잘 졸라 매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매달 나가는 고정비도 줄이고 생계를 위해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만 했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와 서툰 고객 응대, 주의력 결핍으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참아야 했다. 신물 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생계만을 위한 일을 하며 겨우겨우 살아야 하는지, 여기서 더 밀려나지는 않을지. 그래도 여기서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생각으로 버티고 서 있다. 설령 그게 매주 토요일마다 로또를 사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일지라도.


 







* 주택가에서 생활에 필요한 수요를 공급할 수 있는 시설로 지정된 곳이다. 근린생활시설은 1종. 2종 근린생활시설로 나뉜다. 1종에는 슈퍼, 목욕탕, 이용원, 의원, 체육도장 등이 포함되며, 2종에는 대중음식점, 다방, 기원, 헬스클럽 등이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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