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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May 12. 2022

배달 중독

가장 일차원적인 해결책


 과제하기 싫은 마음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 부모님이 싸울 때 무력감에 사로잡혀 과자 한 봉지쯤은 먹을 수 있죠. 하지만 그것이 계속 반복되어 정작 해야 할 과제를 못 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만큼 폭식을 한다면 이는 위험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은 피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피한다면 정작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 김윤아, 「또, 먹어버렸습니다.」



 나는 택배를 많이 주문하지 않는다. 한때 옷과 신발에 심각하게 빠졌던 적이 있지만(지금도 관심은 있다), 지금은 딱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있다. 남들이 자주 다니는 여행도 잘 가지 않는다. 게임도 안 한다. 심지어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비는 늘 바닥을 보이고, 휴대폰 결제를 이용할 정도로 돈이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고?


 내 가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민트색 배달 어플이다. 이 조그마한 아이콘 하나에 내 탕진의 역사가 담겨 있다. 작게는 커피나 조각 케이크 같은 디저트류부터 크게는 족발이나 참치 같은 어마어마한 음식들까지. 도저히 1인 가구의 식생활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화려한 내역들이 내 휴대폰에 담겨 있다.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할 판에 배달음식이라니. 제정신인가 싶지만, 솔직히 말하면 제정신이 아니다. 난 이미 배달에 중독된 상태이니까.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음식이 문 앞에 도착하는 프로세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문 앞에 도착한 음식을 뜯고 우적우적 먹고 있노라면 평소 날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기 충분하다.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배달음식이야말로 이 수식어에 적합한 존재가 아닐까?


 이쯤 되었으니 나도 안다. 지금의 내가 배달 중독에 폭식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심지어 정신과 주치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의 범위는 늘 임계점을 넘어버리기 일쑤였고, 그것은 정신과 진료나 상담 치료(현재는 상담비 부담 때문에 못 받고 있다)로도 해결이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내 뇌는 지금 행복하지 않고 괴로우니까 뭐라도 입에 넣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현재까지 내게 있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일차원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배달음식의 문제는 내 가계를 갉아먹는 데만 있지 않았다. 폭식증을 앓고 나서부터 내 몸무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만들어 낸 표준 체형은 일 년 만에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거듭 반복된 요요 현상으로 인해 내 몸무게는 100킬로그램에 육박했다. 오랜만에 본 아빠가 병 걸렸냐고 할 정도면 말 다 한 셈이다.


 배달 어플을 지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삼일도 못 가 다시 다운로드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절약을 위해 가계부도 써봤지만, 내 소비에 대한 민낯만 드러낼 뿐이었다. 심지어 배달 어플로 마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되자, 더더욱 지울 수 없었다. 어떤 묘안을 써도 배달에 대한 내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안내 음성을 빌리자면,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습관을 바꿔야 하는 걸까? 아니면 환경을 바꿔야 하는 걸까? 이걸 알면 배달 중독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습관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으로, 누군가는 예술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를 해치지 않고 스트레스 해소도 할 수 있는 습관과 환경을 만들기로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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