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차량과 콘크리트 정글
또 나는 그들이 내가 하는 어떤 형태의 이야기든 언제나 대단히 관심을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정한 부분에서 벗어나지 않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증언은 반응이 좋았지만 내가 가난에 대한 이해, 즉 그 원인과 영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관찰하기 시작한 것들에는 관심이 덜했다. (중략)
“여기서 쓰는 예산은 누가 결정하는 거죠?”, “여기 일자리가 모두 가난 때문에 생겨났다면 당신들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죠?”와 같은 질문이 내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 대런 맥가비, 「가난 사파리」
어떤 사회 문제를 다루든 간에 당사자성이 가진 힘은 세다. 때문에 소수자들은 그들을 둘러싼 위협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이크 앞에 서서 스스로의 경험을 증언한다. 이는 해당 시민단체의 후원 증가로 이어지거나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 내 경험을 증언한 적 있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사회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동기가 되었다. 2020년 여름에 니트 청년 당사자로 출연한 CBS의 뉴미디어 콘텐츠 씨리얼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니트컴퍼니* 홍보에 어마어마한 도움을 주었다.
이후 재미있는 일들도 있었다. 내가 인터뷰한 콘텐츠들이 꽤 많이 퍼지면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는데, 주로 시민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느슨한 연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는 나그네(별칭)도 있었다. 모 협동조합의 공동체 활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내가 나온 PPT를 보게 되었다고 연락을 주었다. 이 소식을 쿵짝(별칭)에게 전달하고 나서 그는 니트컴퍼니 참여자들을 관찰, 분석하는 연구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언론 노출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은 미리 정해 놓은 답을 가지고 인터뷰이에게 원하는 답변을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인터뷰를 몇 번 하고 난 후에는 인터뷰어에 대한 존중이 사그라들었다. 특히 청년 니트를 획일적인 시선에서 접근하는 것에 대해 불쾌함마저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터뷰를 많이 한 편에 속했다. 혼자 살면서 늘 생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더운 날 B마트**를 하며 8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돈을 받는 것보다 주어진 질문에 형식적인 답을 하는 게 훨씬 꿀알바이기 때문이다. 오디션에 연속으로 출연하는 연예인처럼 이미지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오래 할 수는 없는 알바지만 말이다.
카메라 앞에서 횡설수설하고는 잊고 있을 때 입금이 되었다는 알림을 받으면 꿀을 빠는 데 성공했다는 쾌감마저 느껴진다. 이런 내 모습에 배덕감마저 느껴지지만 어쩌겠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팔 수 있을 때 팔아야 하는 걸. 때문에 나는 청년이고 니트일 때 팔아야 하는 사연을 열심히 판매했다. 중년이 되면 팔 수 없기 때문에.
청년 니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인터뷰어나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길은 없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이 주는 돈 앞에서 난 매우 진심이다. 진심을 다해 답을 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연기를 한다. 이 모습이 사파리 속 동물들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사파리 차량은 규칙적으로 오지 않고, 누군가는 굶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이 사파리 존을 나갈 일이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일 년은커녕 한 달 앞도 모르는 삶이니까. 때문에 사파리 존에 머무를 때 성장해야 한다.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는 각자도생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 니트컴퍼니: 백수들이 운영하는 가상회사 컨셉의 프로그램. 사단법인 니트생활자에서 운영 중이다.
** B마트: 배달의민족에서 운영하는 창고형 마트 서비스. 주문하면 3-40분 이내로 물건이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