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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Jun 12. 2022

병이 나를 지워버릴지라도

내 머릿속의 지우개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매 순간이 무의미했고 고통스러웠다. 질문이 떠오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으로 얻은 것도 여럿이지만 역시 우울증에 걸리기 전이 나았다. 그렇다고 죽지도 못할 것이기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차피 살 거라면 덜 힘들게 살아야지.”   

- 이하늬, 「나의 F코드 이야기」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꿈을 잃은 삶, 손을 뻗을 때마다 모두 잿빛으로 뒤바뀌는 순간들. 우울증은 발병 전에 내가 칠해둔 색들을 전부 앗아갔다. 스케치한 선들도 지우개로 막 지워놓은 것처럼 엉망이 되었다. 그림이 지워진 도화지는 백지와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구겨지고 지저분한 자국이 남아 얼룩덜룩한 종이. 내 머릿속의 지우개, 그것이 내가 느낀 우울증의 실체였다.      


 우울증은 감정들도 지워버렸다.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등의 감정들은 엉망으로 지우고, 발병 후 처음으로 느꼈던 당혹스러움마저 지워냈다. 그저 멍하고 물을 가득 머금은 솜처럼 무거운 우울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밑도 끝도 없이 우울했다.     


 우울증이 발병하기 전에 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음악을 하면서 속에 쌓여 있는 이야기를 털어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말로 털어내면 당혹스러워할 수 있는 얘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면 세련되고 멋있어 보이니까. 근데 무슨 얘기를 하려 했지? 우울증은 내가 하려던 말도 지워버렸다.  


 모두 지워져 버렸다. 난 시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움직여서 일을 하고 커리어를 쌓는 행위를 할 수 없었다. 학업을 이어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한심하게 여겼다. 사지가 멀쩡한데 종일 누워만 있다고, 노력도 하지 않고 변명만 한다고.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난 점점 고립되어갔다. 그렇게 20대의 절반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약물 치료를 받고 우울증이 호전되어도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구겨진 종이들과 재가 된 모든 것들을 떠안은 채 난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세상은 내게 늘 가혹했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외선처럼 따갑게 가르쳐줬다. 호전 후 내가 강렬하게 느낀 감정은 모멸감이었다. 사는 게 너무 모멸스럽고 치욕스러웠다.


 숨을 쉴 때마다 자살을 기도했다. 때로는 추상적이고 때로는 구체적으로. 물론 나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다. 이 지리멸렬한 삶은 끝없이 이어졌다. 지긋지긋하고 짜증이 났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이 삶은 아마 죽을 때까지 날 괴롭힐 모양이다.


 발병 이후 미래를 그리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구겨진 종이들을 치워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알바를 구하고 채무를 조정하고 월세를 내고 글을 쓴다. 일 년은커녕 다음 달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하루를 버티고 한 달을 버티고 그렇게 일 년을 버틴다.


 앞날을 낙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반의 희망을 가지고 산다. 냉정하게 내가 처한 현실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오히려 점점 나빠질 거라 확신하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낙관적이다. 글을 쓰는 이유도 절반의 희망 때문이다. 희망을 가지고 계속 쓰는 한 언젠가 한 보 정도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설령 병이 나를 지워버릴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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