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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Sep 28. 2022

쓰레기 방에 산다

나는 쓰레기다



 괴로움은 삶에 다달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행복이 우리를 찾아온다. 당연하게 여겨서 모를 뿐이다.

- 김새별 / 전애원,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오후 2시.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으로 SNS를 한다. 휴대폰 너머 침대 위에는 정리하지 않은 옷가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깔끔히 개어 차곡차곡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하지 않았다. 귀찮은 듯이 다리를 이용해 침대 한쪽 구석으로 옷가지를 밀어 넣었다.


 몇 시간 뒤, 밀어 넣은 옷가지들 사이에서 위아래 한 벌씩을 꺼내 엉거주춤 입었다. 시작한 지 몇 달 된 알바 때문이다. 양말 짝을 찾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도대체 어디 던져둔 거지? 겨우 짝을 찾아 신고 나갔다. 아무렇게나 던져둔 비닐봉지와 쓰레기들이 발에 치였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다.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화장실 바닥은 끔찍함 그 자체다. 하수구는 머리카락으로 막혀 있고, 그 주위를 시꺼먼 점들이 뒤덮고 있다.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지만 애써 무시한다. 슬리퍼를 신은 채 샤워를 하고 나왔다. 싱크대가 눈에 들어왔다. 싱크대는 배달 용기들로 가득 차있는 상태다. 날파리 몇 마리가 그 위를 날고 있었다.


 으악! 지긋지긋해! 물을 마시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역시 아비규환이었다. 다 먹지 못한 채 유통기한이 지난 반찬과 식재료, 배달음식 등이 뒤섞여 곰팡이를 피우고 있었다. 음식을 남긴 자,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지옥을 외면한 채 냉장고를 음식물 쓰레기 지옥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또 무언가를 (시켜) 먹으면 싱크대엔 플라스틱이, 냉장고엔 남은 음식물이 쓰레기가 될 것이다. 7평도 되지 않을 공간에서 어마어마한 환경오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쓰레기 방을 치울 여력이 나지 않았다. 지금 난 심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최소한의 씻기나 빨래를 제외한 그 무엇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에 있으면 항상 누워 있었다. 지독한 우울과 무기력이 나를 침대에 눌어붙게 했다.


 이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이도 많이 먹고 기술도 없고 이렇다 할 성과도 없는데, 사회에 나가 일 인분의 역할을 다하며 살 수 있을까?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시 쓰레기 방에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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