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퐁 Oct 04. 2022

사는 게 지겹다고 했더니

마음의 골절

  

모든 일을 매듭지을 필요는 없다.
당신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것이 가장 잘 지어진 매듭이다.


 -  김은주,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또 아침이 왔다. 약 기운에 몸을 맡겨 다시 눈을 감는다. 아침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다.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감각을 몸서리치게 싫어한다. 아침이 올 때마다 나는 굴러 내려온 바위를 산 위로 올리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닭의 목을 쳐도 새벽은 오고 아침은 시작된다. 바위는 굴러오고 나는 바위를 피하기 위해 허둥댄다. 앞으로 50년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이렇게 사는 게 지겹다고 상담사에게 털어놓았다. 그를 만난 자리는 고립 청년 지원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내 버크만 검사* 결과를 해석해주는 자리였다. 폭우와 교통 체증으로 심각하게 늦은 상황에서 첫마디가 ‘사는 게 지겹다’라니. 아무리 다년간의 임상 경험이 있는 상담사라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상담사는 다소 화가 난 투로 내게 말했다.


“지금 OO 님은 마음에 골절을 입은 상황이에요.”


 마음에 골절이라. 그래. 그런 것 같았다. 걷지도 못할 상황에서 나는 걷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다. 그 누구도 내게 목발을 주거나 깁스를 갈아주지 않았다. 붕대를 감은 것도, 목발을 짚기 위해 발버둥 친 것도 결국 내 역할이었다. 상담사는 진로나 친구, 가족 관계에 대해 추가적으로 물었다. 난 여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친구들은 연락이 되지 않고, 설령 입사를 해도 수습 기간도 못 채우고 잘릴 것이라고. 역시 상담사는 다소 화가 난 투로 상담을 이어갔다.


 상담 내용 대신 그 감정만 기억에 남는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내 상태가 꽤 심각하다는 게 생각보다 와닿았던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로 검사 대신 3회기의 심리상담을 신청할 걸 그랬다. 그의 말대로 진로를 정하고 하루빨리 취업을 하기 위한 내 발버둥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걸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이 그건데 어떡해요.


 마지못해 그의 얘기를 계속 듣고 있었다. 보통 심리상담의 경우 내담자의 발언 위주로 진행되지만, 이 자리에서 나는 주로 듣고 그의 피드백에 반응하는 정도였다. 애초에 이 자리가 심리상담을 위한 자리가 아니기도 했지만, 내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전문가인 그가 열변을 토하게 만든 걸까?


 상담사는 내게 서너 가지 해결책을 제안했다. 우선 가급적 상담을 받을 것. 상담을 하면 마음의 근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금 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 것. 당시 난 사설 학원에서 취업 컨설팅을 받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취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취업한 곳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최소 6개월은 버티라고 했다. 6개월이 지나면 1년, 1년이 지나면 2년을 버틸 힘이 생기니까. 슬프게도 버티기는커녕 이후 하는 알바들마다 바로 그만둠의 연속이었지만, 그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그는 독서와 유산소 운동을 꼽았다. 독서를 하면 내 현실이나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심신이 괴로울 때 책을 읽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군 복무를 할 때 책을 많이 읽었다. 군대에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몸을 만드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지독한 운동치였던 내게 운동은 진입 장벽이 높았다. 그럼에도 운동을 하는 것은 마음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유산소 운동의 경우, 도파민 분비에 효과적이다.


 짧은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결국 내 의지에 달린 일이란 것. 독서도 운동도, 심리상담도 본인이 의지를 내야 한다는 것. 도움을 받고 싶으면 힘을 내야 한다는 것까지. 하지만 난 그의 말처럼 마음이 골절된 상태였다. 이런 내가 과연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여담으로 다음 고립 청년 지원 사업은 신청하지 않았다. 내 기대보다 실효성이 다소 떨어졌고, 때마침 공공일자리 사업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년 이맘때 받은 짧은 상담은 내 기억에 오래 남아 글감이 되었다. 왜 그런 걸까?





*버크만 검사(버크만 진단): 1940년대 말 Roger W. Birkman 박사에 의해 개발되어 60여 년간의 조사, 연구를 통해 발전해온 진단. 관계적, 직업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진단도구로 개인의 관계 특성과 직무특성을 포괄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자기 이해와 코칭, 팀빌딩, 리더십 개발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자신과 타인이라는 두 개의 필터를 통해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조작 가능성이 낮아 신뢰도 높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이전 09화 쓰레기 방에 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