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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Oct 08. 2022

이상하고 별나지만

살 가치가 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 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 문지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돌이켜 보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흥행은 참 ‘이상한’ 현상이었던 것 같다. 장애를 욕으로 쓰고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을 공기업이 탄압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폐 스펙트럼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히트할 줄이야. 한국 사회의 인권 의식이 성장한 걸까? 솔직히 1도 모르겠다. 패션부터 정치까지 80년대로 회귀하고 있는 이 시대에? 어쩌면 자극적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참신함을 찾다 보니 얻어걸린 기연이 아니었을까?


 앞서 언급한 작가의 전작 「증인」이 개봉할 무렵, 나는 자폐 스펙트럼을 의심하고 소아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지금은 사회성 부족이 정신 장애와 큰 상관이 없다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대인관계와 사회성 문제를 내 결함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매번 날 넘어뜨렸기 때문이다.


 정신과를 다니면서 각 잡고 상담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약물이 아닌 상담과 분석을 기반으로 한 진료라니! 진료실에 들어가면 식사를 잘하는지, 언제 자는지, 기분은 어떤지, 묻는 질문에만 답하고 약을 받는 게 전부였는데. 처음 진행하는 상담에 내심 신기하고 신이 났다. 아마 ‘병’이 아닌 ‘장애’를 진단해야 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상담을 진행할 때마다 숙제가 주어졌다. 영화를 보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분석할 때도 있었고, 과거의 에피소드를 꺼내 타인의 감정이 어땠을지 유추할 때도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진단하는 일종의 간이 시험지 같은 느낌이었는데, 나는 내 생각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자폐라고 보기 어렵다’는 소견을 받은 채 원래 다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자폐 스펙트럼이 아니면 난 도대체 뭐지? 음, 지금 생각해 보면 특정 상황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였던 것 같다. 내게 필요했던 건 장애 진단이 아니라 트라우마 치료였다.


 상담을 받기 몇 주 전, 나는 살던 원룸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약물을 과다 복용하고 유서를 올렸다. 사는 게 치욕스러웠기 때문이다. 왜 치욕스러웠냐고? 몇 시간 전, 나는 단기 알바를 하는 공장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우습게 여기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나를 옥상으로 불러 희롱했다.


 조금만 달라도, 조금만 이상해도 사람들은 무리에서 배척하거나 괴롭힘을 가한다. 낯선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무리 지어 밀어낸다. 보이지 않는 쪽으로 밀어내고 밀어낸 끝에 마침내는 절벽으로 떨어뜨린다. 심지어는 노키즈존을 만들어 어린이를 박대하고 주거에 계급을 매겨 임대 아파트 주민들을 차별한다. 「우영우」 속 나쁜 놈은 ‘권모술수’ 한 명이지만, 현실에는 권모술수보다 더한 악마들이 사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비약이 심하다고? 반박 시 여러분 말이 다 맞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의 선의를 믿고 싶다. 어디선가 ‘봄날의 햇살’ 같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선을 행하고 있다.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SNS에 올린 유서를 보고 119에 신고를 해준 사람,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고 DM을 보낸 사람들, 또 주민센터에 동행해 긴급생계비 신청과 자살예방센터 등록을 도와준 활동가들. 그들 덕에 나는 삶의 한 고비를 넘겼다.


 뿐만 아니라 유서에서 글 솜씨를 발굴해준 친구들 덕에 브런치에 글도 쓰게 되었다. 특히 요즘 들어 글에 대한 칭찬이 늘어 부끄럽다. 내 글을 기다린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노력하고 싶어진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내 이야기를 하나의 책으로 엮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영우」가 가져온 파급력만큼, 이 사회가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꼭 장애 이슈가 아니어도 좋다. ‘이상함’을 이유로 밀려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우연히 청년센터에서 니트컴퍼니 얘기를 했더니, 매니저가 자신도 청년 니트 문제에 관심 있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 ‘estas’와 신경다양성* 단체 ‘세바다’를 알게 되었다.








* 인간의 뇌마다 사회성, 학습, 주의력, 기분 등 중요한 정신 기능에 자연적인 다양성이 있다는 개념이다. 높은 민감성으로 인한 남다름(자폐, 아스퍼거 증후군, ADHD, 감각처리장애, 공감각 등)을 병리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대신, 신경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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