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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Oct 09. 2022

너무나 많이 욜로 한 죄

너무나 많이 놀아제낀 죄


 “아마도 우린 세상에 빚을 갚아야만 했을 테니까.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우리는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가 이제 돌아온 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쉬는 동안 뭐 했어요?”


 예상되는 면접관의 질문. 다시 한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훑어본다. 축제 기획, 연극 공연, 니트컴퍼니 활동 등… 아무리 훑어봐도 열심히 논 얘기들 뿐. 좋게 봐도 즐거운 청춘을 보낸 흔적밖에 안 보인다. 다른 취업준비생들도 나처럼 열심히 논 흔적을 입사 서류에 스펙이나 경험으로 포장해서 쓸까?


 그래. 결과물이라도 있으면 뭐라도 되겠지. 하지만 암만 영끌해도 이 활동들을 통해 회사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 팀 작업인 데다가 팀 내에서 내가 기여한 부분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영상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오, 아버지여! 왜 입이 닳도록 기술을 배우라 했는지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나란 인력에 상품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또 취업 준비를 하느라 발생한 최근 1년의 공백 기간은 어떻게 설명할까?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할까? 아니면 위독한 병으로 오래 투병 생활을 했다고 할까? (정신병도 투병이라면.) SNS에 이렇게 올렸더니, 랜선 지인이 극구 말렸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안 아플 수 있어?!


 알짜배기 상품이 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 5년 전부터 좋은 상품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부모도 취업 컨설턴트도 나를 후려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난 더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했다. 취업? 그딴 거 난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테야! 혹독한 환경에서 최상의 원두가 되는 커피와 달리 나는 최상의 인력이 되는 데 실패했다. 차라리 커피로 태어날 걸.


 나이가 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보낸 내 지난 세월들이 일종의 자해였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그 시간들은 연체된 청구서 같은 것들이니까. 이제는 청구서에 적힌 계좌에 입금할 시간이다. 남은 시간 성실하게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요즘 들어 느낀 교훈이다.


 요즘 말로 스불재라고 하나? 내가 받아 든 청구서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셈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받아들일 수밖에. 소위 말하는 ‘공정’ 담론을 들이밀자면, 내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누군가는 억울할 게 아닌가? 본인은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 쌓았는데 나처럼 욜로(YOLO)*한 사람이 붙어 버리면 말이지.


 이래저래 억울하고 불공평한 사회다. 자본주의의 룰을 충실히 따른 쪽도, 룰은 신경 안 쓰고 꿈만 좇은 쪽도 말이다. 돈이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받는 입장에서는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예상할 뿐. 돈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니까. 때문에 정치인들은 자본주의의 룰을 충실히 따르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공정’을 화두로 꺼낸다. 그들의 정책이나 공약이 정말 청년들에게 공정한가 별개로 말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가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양의 머리를 달고 개고기를 파는 상황이 남 얘기 같지 않아서 좀 찔린다. 하지만 어쩌겠나? 상대가 속아 넘어갔다면 내 영업 솜씨가 뛰어났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게 자본주의다!) 설령 속았다 한들 일개 신입사원이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칠 만한 실수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안 맞는다 싶으면 수습 기간에 해고할 수도 있고. 아니, 막말로 대통령 뽑는 것도 아닌데 좀 속아 주면 안 돼요?





*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로,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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