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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Oct 10. 2022

사이드 프로젝트로 스펙 쌓기

몸값 올리려고 자기를 착취하는 현대인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란 말을 요즘 들어 자주 듣게 된다. 본업 대신 개인적으로 수행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하는데, 본업보다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사람들은 글, 그림,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주제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어쩌면 내가 브런치에 연재하는 이것 역시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은 여간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 역시도 동네에서 연극 활동을 하는데, 매주 1회씩 연습에 참여해야 한다. 특히 공연을 앞둔 시점에는 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낼 수밖에 없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시간을 쪼개 연습에 매진해야 좋은 공연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직장 생활에 소진되면서 꾸준히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게 얼마나 큰 성실함을 요하는 일인지 아는가? (나는 반백수니까 괜찮지만.) 순수하게 본인의 흥미를 위해 귀한 시간을 쓰는 직장인들에게 존경심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 빌어먹을 한국 사회는 사이드 프로젝트마저 성장과 스펙 향상을 위한 도구로 끌어다 써야 한다. 뭐, 어차피 실리콘 밸리에서 온 개념이니까.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스펙을 쌓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사이드 프로젝트의 핵심이 ‘딴짓’을 통한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딴짓’을 하면서까지 손익과 성과를 계산하는 게 싫을 뿐이다.


 사실 이력서를 쓰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내가 해왔던 활동들을 정량적인 지표로 계산해 회사에 어필하는 행위가 싫증이 났다. “너무나 많이 욜로 한 죄”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일까? 내가 쌓은 재미와 추억들을 계산하려 할 때마다 인정을 호소하게 된다. 스펙이 부족해 사회인 극단에서 아마추어 배우로 공연한 것까지 포트폴리오로 엮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 거란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추억조차 조각조각 땃따따 기업 마음에 들게 조립하고 있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서 화가 난 건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즐겁게 해온 ‘딴짓’들을 순수한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내가 순진하게 느껴진다. 아휴. 속물과 낭만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드라마처럼 “얼마면 돼?”


 그러다 보니 퇴근하고 나서도 공부를 하고 현직자 커뮤니티를 찾아 일 얘기를 하는 현대인들을 보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성장판 닫힌 성인들이 성장을 부르짖는 꼴도 징그럽고. 차라리 연봉 더 받고 싶다고 하는 게 솔직한 거 아닐까? 신자유주의가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욕망들을 죄다 벗기고 싶다. 결국 본질은 돈인데. 결국 돈 때문에 무리하고 자기계발 하는 거 아닌가?


 나 역시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이건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에 가깝다. 취미로 하는 사회인 극단 활동까지 영끌하여 포트폴리오를 엮는 내가 학원에 다니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자기계발을 하는 직장인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취업을 하고 난 뒤의 내 모습이 후자일 수도 있다. 이직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 더 높은 값에 스스로를 팔려는.


 대도시, 특히 서울에서 버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본인을 상품화하여 시장에 내놓는다. 이직과 커리어 플랜을 반복해 인력 시장에 더 높은 값을 불러야 서울에서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사에 다니는 걸로 모자라 학원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스스로를 쥐어 짠다. 그렇지 않으면 몸값 올리는 데 실패하고 사회에서 도태될 테니까. 여러 모로 안쓰러운 현실이다. 번아웃과 도태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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