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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퐁 Oct 10. 2022

확실한 재능

나의 지뢰찾기


 대체 앞으로 무슨 글을 써서 어떻게 먹고산단 말인가. 나의 지뢰찾기가 다시 시작됐다. 아마 강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만하면 잘 쓴다’고 생각해 예술대학에 입학했는데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고 낙담한 사람.

- 수미, 「애매한 재능」



 지난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낙선하고 나서 올렸던 글들을 내렸다. 주변에서 내게 극찬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지만, 단 한 번의 낙선으로 내 글은 출판할 가치가 없는 글이 되었다. 지인들이 내게 글을 잘 쓴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했어도 무수히 많은 응모작을 뚫고 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유서에서 내 글솜씨를 발굴해 낸 사람들과 글을 쓸 때마다 칭찬해 준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리며 글쓰기에 확실한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 응모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확실한 재능은 자본이 화답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어디서 갈리는 줄 아는가? 바로 돈이다.


 지난 브런치북 수상작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확실한 재능을 질투했다. 특히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이 중쇄를 찍을 때마다 모차르트를 보는 살리에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 저게 확실한 재능이구나. 확실한 재능은 지갑이 말하게 하는구나. (민음사, 보고 있나?) 하지만 난 살리에르처럼 이인자도 아니고, 최고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내 글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돈으로 환산하고 싶을 뿐.


 유일한 재능이라 믿었던 글마저 애매한 재능임을 확인하고 나니 좌절감이 들었다. 그동안 ‘욜로’ 해왔지만, 확실하게 재능이 없어서 포기한 것들도 많았다. 음악, 디자인, 사진이나 영상 등… 포기할수록 시간만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실패도 포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없는 사람에게 실패는 다음이 없다는 신호나 다름없으니까.


 그렇다고 마냥 좌절만 하진 않았다.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 역시 생각해봤다. 실패를 복기해야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일단 내 글은 에세이라기보다 칼럼 같았다. 보통의 에세이는 에피소드가 동영상처럼 흘러가듯 진행되는데 내 글은 칼럼처럼 한 사건을 사진처럼 두고 필자가 의견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다른 에세이에 비해 문단 수도 적고 임팩트도 부족할 수밖에.


 그리고 확실한 콘셉트와 기획력이 부족했다. 작품을 만들어 파는 데 있어서 콘셉트와 기획을 어필하지 못한다면 그저 텍스트 더미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전할지 고민하지 않은 티가 났다. 내 이야기를 전하는 데 급급한 탓이었다. 그러니 독자에게 와닿을 리가 있나.


 앞서 말한 것처럼 확실한 재능과 애매한 재능은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에 따라 갈라진다. 그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고, 내가 활동하는 동네 극단의 연출가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마추어여도 마인드 셋은 프로와 같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객들은 우리 공연에 시간을 쓰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하면 그들의 시간을 날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니까.


 그 얘기를 듣고 내 글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지인들이 떠올랐다. 난 알게 모르게 그들의 하루 중 일부를 내 글에 쓰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한 프로의 마인드 셋을 갖추지 않고 프로의 돈주머니를 탐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자만하지 않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절치부심해야지. 내 글에 기꺼이 시간을 내준 사람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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