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의 삶으로 끝나던 시간은 종료되고,내삶이 흔들리면 함께하는 이의 삶도같이흔들릴 수 있다는 것에서요.
그러기에 과정 하나하나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고, 결과에 대한 책임감은 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면 아직도 삐뚤빼뚤 서툰 선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서 나에게도, 나와 함께 걸어가는 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여느 시장이 그렇듯, 제가 머무는 시장 역시 상위 1%의 능력치를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의 부를 벌어들입니다. 강산이 한번 바뀐다는 시간을 넘어섰는데도, 저는 아직 그 근처에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많은 부를 가질 수는 없을지라도 70~80%의 능력치로 먹고살만하면 좋을 텐데, 세상이라는 곳이 그렇게 수학적으로 딱딱 나누어지지는 않는지아등바등 살아도 제 몫을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만둘 정도로 아주 저점의 능력치는 아닌 것 같아 계속하고는 있지만, 이쯤 되니 점점 하는 일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맞는지 확신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책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게 쉽지 않아서, 마음만이라도 그 꿈을 품고 지금을 살아내고자 하는 몸부림인지를 반증해 주는 것 같아서 서글픕니다.
꿈도 좋고 도전도 좋지만, 무언가를 하는 것만으로는 의미를 갖기 힘들고, 성과가 나와야 하는 생계의 무게를 과연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될까 봐 불안함에 삶에 그대로 안주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지금껏 쌓아온 것을 두고 새로 시작하자니 엄두가 안 나 어영부영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고민은 쌓여갑니다.
하는 일이 조금 잘 진행되는 것 같을 때는 금방이라도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 같은 근거 없는 희망에 잔뜩 부풀어 몸을 불사르듯 달리다가도, 일의 성과가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올 때면 어딘가 구멍 난 자동차 타이어처럼 사랑하는 이들이 불어넣어 주는 기운과 희망의 말에도 힘을 내지 못하고 이윽고 퍼져버려 그 자리에 꼼짝없이 가라앉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일희일비의 삶.
실패의 데이터가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덧대어지는지나를 믿는 힘이 점차 줄어듭니다.
매일 다른 하루라고 하지만 오늘이 어제와 같은 날처럼 반복될 때면 '특별한 발판이 되어주는 기회가 생기지 않는 이상, 현실이 달라지는 건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짓눌리곤 합니다.
좋지 않은 결과의 분석을 '의지가 부족한 것'과 '무능' 둘 중 무엇으로 정의 내린다 한들
다 나를 상처 입히기만 하는 딜레마에 빠질 뿐입니다.
때때로 치열함에 따르지 않는 보상에 화가 나고
이따금 휴식을 길게 취할 때면 나태함에 달라붙은 죄책감에 잠 못 이룹니다.
소진한 마음을 채우지 못한 채 이어가는 것에도 점점 지쳐가는지 스스로 열정을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물이 딱 100도가 되어야 끓는 것처럼, 정말 조금만 더 이 길을 따라가 보면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지점이 올까요.
아니면 계속 이런 삶의 연속인 걸까요.
끝을 알 수 없다는 건 희망을 꿈꿀 수 있어 즐겁기도 한 일이지만 무서운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자그마한 희망 한 톨 쥐는 것이 때론참 힘이 듭니다.
이때쯤이면 안정적으로 달릴 줄 알았는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습니다.
보장되지 않은 앞날에 다시 크게흔들리는이유는, 왜인지 지금의 행보가 삶을 결정짓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 같아서입니다.
이럴 때 가장 고민하게 됩니다.
하던 일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이젠 다른 길로 향해야 하는지요.
모두의 답을 따라 살던 시간을 거쳐 비로소 나를 알게 된 지금 '나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살고 싶은 욕망'과
오래 걸어오던 길의 방향을 돌리더라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은 나이'라는 것이 더해져
제2의 사춘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사춘기와 다르게 이제는 나와 함께하는 이들을 고려하며 삶을 책임져야 하기에,이번 방황은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