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체시력이 이리 좋았나 싶을 정도로 빠른 스크롤. 세계 곳곳을 순간 이동하는 초능력자처럼 휙휙 쇼핑 앱을 넘나 듭니다.
필요한 물건을 검토하고 대체될 더 좋은 상품은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없을 때는 필요할 물건을 찾아 나섭니다. 필요한 때 사면 거주하는 곳의 활용도 좋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정가를 주고 산다는 게 아까워져 동면에 들어가는 동물들처럼 미리 쟁여둡니다.
한밤 쇼퍼가 된 지는 좀 되었습니다. 사려는 물건을 여러 사이트에 담아두었다가 사이트 자체 이벤트와 브랜드 이벤트가 겹쳤을 때, 운 좋게 내가 가진 카드의 청구 할인과, 쌓을 수 있는 적립금을 비교하다 ‘이것보다 더 싸게 사긴 힘들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날 밤, 자정이 되기 몇 분 전 상품을 구매합니다. 최적의 조건이라 생각해서 구매하지만, 이따금 다음 날 더 높은 할인율로 구매할 수 있기도 해서요.
한밤 쇼퍼가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은 한정적이라서요. 며칠, 때론 몇 달 갖고 싶어 내내 눈에 아른거리는 제품을 가끔 구매하곤 합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이건 사야 해!' 합격점을 받은 제품인데도, 이상하게도 구매 후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하나씩 보이곤 합니다. 그럴 때면 구매 전에 보았던 후기들도 다시 찾아봅니다. 같은 후기인데도 사고 나면 단점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마음 불편해하다 ‘이게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다시 한번 곰곰이 주머니 사정을 따져 생각해 보면, 그 물건에서 마음이 떠나갈 때가 있습니다.
소유하지 못한 것과 소유하게 된 것의 욕구가 다르다는 걸 그렇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한밤중에 구매 후 고심하다 아침이 되기 전에 취소하면 판매자에게 주문이 전달되지 않기에 여러 사람의 수고를 거치거나 피해 끼치지 않고 취소할 수 있어서 선호하게 된 방법입니다.
이런 수고를 들여서일까요. 같은 제품을 더 좋은 가격대에 사게 될 때면 짜릿한 쾌감이 들다가도 이미 구매한 제품이 더 저렴한 가격에 나올 때면 그간 들인 시간이 아까워 헛헛해집니다.
이따금 이렇게 시간을 쓰며 싸게 사는 것이 정말 내가 돈을 아낀 게 맞나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버는 것보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쉬워 절약하던 습관. 이제는 하지 않으면 불안해진 걸 보면 중증, 아니 중독이 된 것 같습니다.
주머니가 빌수록 물욕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비어갈수록 되려 공허해지는 마음을 물건으로라도 메우고 싶은지 그득그득 장바구니에 담다 보면 어느새 관심 개수를 초과해버리곤 합니다.
더 담기 위해 덜어내야 하는 상황이 우습지만 정리를 시작합니다.
채운 목록 중 필요한 목록과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다시없을 할인율을 자랑하는 목록, 자꾸 눈에 밟히는 목록으로 나눈 후, 방을 정리하듯 담아 놓은 물건을 하나, 둘 뺍니다. 비교 분석을 위해 담아두었던 구매한 물건을 지우고, 이제 흥미를 잃게 된 물건도 삭제합니다. 조금 더 싸게 사기 위해 인내하던 물품의 품절 안내가 뜨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습니다.
돈과 공간을 지켜냈으니까요.
그래도 미련이 남을 때면 ‘그래 내가 사지 않고 망설였다는 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야’라며 나를 달래며 마음을 비워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