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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은 PainterEUN Oct 30. 2022

역할 체인지

보호자

Photo by Ricardo Moura on Unsplash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은 질문이 느셨습니다.

문서를 대신 읽어주길 바라고

그에 따른 지침을 내려주거나 해결해 주길 바라십니다.


제 손을 이끌던 분들이 이제 제 손을 필요로 하십니다.


진료실 안 환자와 보호자의 위치가 바뀌고

부모님께 눈을 맞추던 선생님은

이제 제 눈을 맞추고 설명해 주십니다.


어느덧 친구들과의 안부에 부모님의 안위를 묻고 답하며

우리가 돌보고 가꾸어야 하는 삶의 영역이 넓어졌음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 어색합니다.


-


부모님께서 제게 의지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두 분의 자기 확신이 줄어들까 봐

하실 수 있는 작은 일마저 하나둘 놓아버리시면 하는 방법을 다 잊으실까 봐

염려스럽습니다.

제가 없을 때 두 분의 세상이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두려움 가득한 곳처럼 느껴지실까 봐요.

포기하지 않고 매번 이해를 바탕으로 방법을 설명하지만

배우는 입장에선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닌가 봅니다.

그냥 해주면 될 텐데 방법을 익힐 때까지 떨어지려 하지 않으니 말이죠.


자신이 없을 때를 대비해 삶의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싶었던 마음.

제가 자라날 때 부모님의 마음도 이와 같으셨겠죠.


과정이 길거나 복잡한 일은 학습 대신 빠른 처리를 해드리기도 합니다.

어렵게 느껴지면 배우는 일에 의욕을 상실하게 되니까요.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 '에라 모르겠다'라며 포기하고 싶어지잖아요. 

이과생이었던 저도, 기초 없이 그때그때 모면하듯 수학 실력을 쌓다 보니 결국엔 와르르 무너지던 순간이 왔을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수학을 포기하고 싶었거든요.

배움의 어려움은 학교 수업과 다르지 않을 테니 자기 효능감이 떨어질 일은 건너뜁니다.

지금 필요한 건 다시 자신을 믿는 힘을 키우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과정이 간단하고 익혀두면 삶이 편리해지는 일을 요구하실 땐 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하나둘 주어지는 임무가 늘수록 마음이 무겁지만, 여전히 제가 기댈 때도 많습니다.

보호자도 부모님이라서요.

여전히 저를 염려하시고 저를 챙기십니다.

생선이라도 올라올 때면 살을 발라주시고, 마트라도 갈 때이면 제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 오십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님껜 자식이라는 존재는 그런가 봅니다.


부모님의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이 노화의 시간으로 접어들어 퇴화의 수순으로 간다 할지라도,

이윽고 자기 자신을 잊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따금 자신을 찾게 되는 그 순간 마음만은 변함없이 저를 보살피실 것입니다.


우린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보호자입니다.


부모님께서 부모가 처음이라 서툴렀던 만큼

저 역시도 서툴게 그 역할을 수행하겠지요.

제 아무리 긴 교육을 받고 지식을 습득한들

턱없이 부족하겠지요.

그래도 부모님은 저의 서툶마저 너그러이 봐주실 것입니다.

이따금 어려움을 토로하는 투정 어린 말에 서운해지기도 하시겠지만

그보다 큰 미안함을 지니시겠죠.

부모라서요.


 마음이 어떠실지 떠올려보니

아직은 많이 모자랍니다.

그 큰 사랑을 쫓아가긴 멀었습니다.



Painter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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