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작가들은 정해놓은 일정 시간 글쓰기를 한다고 하는데 아직 저는 프로에 끼긴 어려운가 봅니다.
해가 떠 있는 시간 어영부영 지내다 이렇게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이 시간대에 들어서야 글쓰기에 돌입합니다.
다음날 이불킥을 할 수도 있으니 밤에 쓰는 글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지만, 남부끄러울 감정이라 할지라도 다 제 안에 있는 감정 아니겠어요. 저는 그것이 저만의 감정이 아니라 깊숙이 잠들어 있는 우리의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종국에 제가 하는 일은 이런 우리의 감정을 건져 올려 전하는 일일 테니 저를 덮은 낮의 보호막을 한 꺼풀 벗겨낸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럴듯하게 허황된 말을 포장해 봅니다.
이성이 지배할 때 감성을 잘 매만져 내어놓는 글쓰기 근육이 있는 이들과 다르게 시간의 힘을 빌려 쓰는 사람인 저는 술 먹고 술에 취해 노는 사람과 술 먹지 않고 술 먹은 듯 노는 사람 중 술 먹고 술에 취해 노는 사람일 터입니다.
며칠 전 사놓았던 고급 막대 아이스크림을 노려보다 새벽녘 꺼내 물었습니다.
평소 비싸서 눈을 흘기며 지나가던 편의점 냉동고에서 가족 구성원 수만큼의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왔습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둘째인 인경이가 거침없이 포장을 뜯어 아이스크림 바를 꺼내 먹을 때마다 군침 흘리다 2회 차 첫째인 인주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바를 싹 쓸어 담는 것을 보고, 에라 모르겠다며 저도 아이스크림 플렉스를 해보자는 심정으로 편의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물론 저는 그녀와 달리 주머니가 가벼우므로 딱 가족 수만큼만 집어 들었습니다.
가족들은 당일 먹었으나 저는 먹지 않았습니다. 냉동고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넣어두고 자린고비 굴비를 바라보듯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냉동고 문을 열어 아이스크림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라볼 때마다 머리로 맛을 상상하였고 언제든 냉동고 문을 열면 먹을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풍족함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할 일 없이 냉동고 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었다 닫는 저를 누군가 본다면 궁금증에 냉동고 문을 열어 안을 훑어보곤 별다른 것 없는 풍경에 이내 저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내가 모르는 사이 자신의 몫을 먼저 해치운 이가 내 것을 탐하지는 않았나, 아이스크림이 무사히 잘 있나' 확인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금 먹을까?, 말까?, 언제가 더 맛있을까?' 자문(自問)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인가?' '아니야!' 저와 싸움을 벌이다, 부쩍 늘어나는 살로 맞는 옷도 없고, 장염이 찾아와 속이 부글거려 조용히 잠들면 좋을 시간, 이윽고 상자를 뜯고 봉지를 찢어 아이스크림을 뽑아 들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할 때가 가장 하고 싶은 법이죠.
오도독 이가 얇은듯하면서도 견고한, 견과류가 박힌 초콜릿 코팅을 뚫고 들어가자 향긋한 녹차 향이 부드럽게 입에 안착했습니다.
아‧‧‧ 정말 때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이토록 맛있을 일인가요!
가장 맛있을 때를 잘 찾아낸 제가 기특했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더니 이래서 그런가 봅니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아‧‧‧ 힐링된다.'는 뇌 속 메아리에 도취하여
배 가득 찬 가스를 품고 그보다 더 충만한 행복감을 순식간에 삼켰습니다.
기름진 튀김과 고기를 섭취한 낮부터 내내 먹고 싶었지만 참다 극강의 맛을 보니
이리도 기분 좋았던 순간이 언제였나 되짚어 볼 정도였습니다.
기분 좋은 일탈로 숙제처럼 짓누르던 원고 하나를 뚝딱 써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날입니다.
저는 조용한 일탈로 오늘치의 행복을 샀습니다.
오늘의 내가 미래에 나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소중히 나태해지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말이라 초라한 지금의 저는 과거의 제가 만들었으니 다 제 책임이란 소리인데, 제가 그 하루하루를 이렇게 행복하게 썼다면 지금이 조금 덜 억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