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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은 PainterEUN Oct 24. 2021

잃은 만큼 좋은 걸 얻었거든요.

글쎄요.

Photo by Nathan Ziemanski on Unsplash


이따금 나이 드는 게 서글프지 않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이 더는 나에게 조화롭지 못할 때.

사이즈 자존심이 웬걸 갑자기 불어난 살로 비율은커녕 여기저기 끼이거나 들어가지 않아 입던 옷을 대량으로 버려야 했을 때.

그럼에도 타인의 시선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나의 행복감이 더 우선시하게 되었을 때.

그런데 건강 앞에서는 그 행복을 접어야 할 때.

어느 순간 거울을 마주하거나 필터 없이 셀카 찍는 건 꺼리게 되었을 때.

뜨거운 열망보다 포기와 체념, 귀찮음이 늘 때.

지난날의 컨디션이 그날로 끝나지 않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이어질 때.

더는 자고 난 아침이 개운하지 않을 때.

하나둘 몸에서 이상을 발견하며 건강이 좋아지는 걸 바라는 건 욕심이고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할 때.

나도 모르게 자꾸 셈을 하게 될 때.

경제 활동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하루하루 걱정이 쌓여갈 때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살아오며 겪은 경험들로 좋아하는 것들이 보다 선명해져서 좋고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도 니 실패 확률이 줄어서 좋습니다.

가지치기로 선택의 범위는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영역에 깊이를 갖게 되었달까요.

물론 그로 인해 새로운 영역의 즐거움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하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곁에 두게 되었기에 자주 즐겁습니다.

그간 생긴 상처들로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아졌지만

막상 닥쳐보니 걱정보다 덜했던 일로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기도 했으니 마이너스는 없는 걸로 여길까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 사이 에너지 뱀파이어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그들에게 쏟던 감정을 줄일 수 있게 되어서요. 제 삶에 여유가 깃듭니다.

제게 세워진 기준과 잣대가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되니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 인정과 존중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르다고 배척하고 밀어내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알게 되며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랑을 느끼며 부모님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를 들여다보며 내가 어떻게 살면 행복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전엔  꿈과 높은 목표를 마음에 품고 쫓으며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는 나를 괴롭히곤 했는데

이젠 '어떤 삶을 살고 싶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라는 소박한 다짐으로 나이 듦을 꿈꿀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도 참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서요.

나이 드는 게 서글프기만 한 일 같진 않습니다.



Painter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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