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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Jun 04. 2017

키토에서 만난 천사 이사벨

국경을 넘어 에콰도르에 도착한 날 적도 위의 천사를 만나다

콜롬비아 칼리를 떠나 에콰도르로 가야 하는 날이 왔다. 살사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고 칼리에도 정이 들었지만, 아직 못 가본 곳이 더 많고 궁금한 곳이 더 많았다.


키토에 가면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하려고 했는데, 다비드가 '자기 누나가 키토에서 살고 있는데, 널 재워 줄 수 있다고 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얘기를 들어보니, 다비드에게는 배 다른 누나가 있다고 한다. 

다비드의 생부는 다비드가 매우 어릴 때 다비드와 다비드의 어머니를 떠났고, 이 생부는 엄청난 한량+폭력적인 기질이 있어서 여기저기에 어머니가 다른 자식들이 있다고. 사실 다비드는 자신에게 배다른 누나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몇 년 전 배다른 누나 이사벨이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을 해 왔고, 그렇게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고 했다. 또 어딘가 다른 곳에 자신은 배다른 형제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비드가 말했다.


배다른 형제의 존재를 알게 되는 일, 한국에서는 막장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사건인지라 실제로 저런 일이 발생하는 장본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고 알게 된다 한들 굳이 상종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더 흔할 것이다. 


남미에서는 비혼 상태에서의 출산이 한국보다 훨씬 흔한 탓일까, 아니면 두 사람이 유난히 착한 성품이기 때문일까. 다비드와 이사벨은 서로를 에르마노(brother), 에르마나(sister)라고 기꺼이 부르며 온라인에서 다정다감한 우애를 쌓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다비드는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나를, DNA 한 가닥도 섞이지 않은 한국인 여행자인 내가 만나러 가다니. 

칼리에서 이피알레스로 가는 장거리 버스(10~12시간 소요)를 탔다. 이피알레스에 내리니 국경까지 태워주는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출국심사장에 내려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나면, 이 사진처럼 뚜벅뚜벅 걸어서 에콰도르의 국경을 넘으면 된다. 사진 속에 저 노란 다리를 건너 보이는 IMIGRACION 이라고 써 있는 작은 건물에서 입국심사를 한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혼자서 육로로 국경을 넘는 일은 처음이었으니, 긴장감과 기대감과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마구 뒤섞였던 시간.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면 밖에 여러 대의 택시가 국경을 넘어 온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택시를 타고 Tulcan 버스 터미널에 가 달라고 말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젊은 에콰도르 남자가 잠시 기지개를 펴거나 버스 터미널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Quito?"하고 묻더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택시 트렁크에서 내 짐을 덜렁 챙겨 한 버스의 트렁크로 옮겼다. 순간 감탄했다.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는 버스 안내양 오빠(?)의 재빠른 행동력이란. 그래서 아무 선택의 여지 없이 키토까지 가는 나의 버스가 정해졌다. 

그 때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지. 버스터미널의 화장실에 들를 여유도 없이 바로 버스에 탔는데, 버스 안에도 화장실은 없었거든. 


툴칸에서 키토까지 4~5시간 정도 버스를 달렸던 것 같다.

에콰도르의 장거리 버스가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남미 다른 국가에 비해 유난히 먹을 걸 파는 상인들이 버스에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 올라탔던 아저씨에게서 Arroz con pollo(치킨+쌀밥)을 사서 점심을 때운 이후로 아무 것도 사 먹지 않았지만, 다른 승객들이 버스 안에서 워낙 이것저것 군것질을 많이 하는 바람에, 저렇게 버스 안에서 먹을 것 장사를 하는 게 그래도 꽤 쏠쏠하겠다 싶었다. 밥, 탄산음료, 카스테라, 망고나 파인애플 등의 과일, 아이스크림 등등 고작 4시간 안에 본 아이템이 끝도 없었다.


와이파이가 있는 버스를 골라 탔으면 좋았을 걸, 내가 탄 버스는 와이파이가 없어서 이사벨에게 연락을 할 수 없어서 조금 불안했다. 도착 예정 시간을 이사벨에게 미리 말하긴 했지만, 그 시간을 훌쩍 넘겨서 키토에 도착할 것 같은데, 미안해서 어쩌지, 그리고 혹 터미널에서 이사벨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머리에서 떠돌았다. 


키토의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아, 어서 이사벨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 와이파이를 쓸 수 있을지 열심히 찾아보자!" 하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 등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의 남자가 나를 불렀다.

"Claudia?"

40대 정도의 인상 좋은 남자가 서 있었다. 더듬더듬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한다. 이름은 페르난도,  이사벨의 남편이라고 한다. 

빙고! 접선 성공.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차에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가는 내내 이사벨은 계속 조수석에서 뒤를 돌아 나를 보며 linda, hermosa, bonita 등등 예쁘고 귀엽다는 온갖 수식어를 동원하며 싱글벙글, 다비드와 신나게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뭐가 그렇게 예뻤을까, 밤새 버스를 타고 달려오느라 그렇게 꼬질꼬질할 수가 없는 몰골이었는데. 나하고 겨우 열 살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 삼십 대 초반의 언니 이사벨은 마치 제 자식을 보듯 나를 봤다. 

이사벨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다비드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이사벨은 굉장히 힘든 삶을 살아 왔다고 했다. 


이사벨에게는 두 명의 쌍둥이 아들이 있다고 했다. 벌써 11살이라고 했다.

이사벨의 나이가 31세 정도 됐으니, 매우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셈이다. 

더군다나 이 두 아들은 현재 남편인 페르난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아니다. 

미혼모였는지, 이혼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여행 당시) 만 23살, 나는 여전히 가족의 품에 기대고 어리광을 피우며 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런데 집에는 이사벨의 두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두 아들이 쓰는 방이 비어있고, 나는 그 방에 묵게 됐다.

이 또한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다비드와 이사벨의 생부가 정말로 엄청난 난봉꾼+쓰레기인지, 이사벨의 두 어린 아들들을 데려가 뭔가 '세뇌'를 시키고 있다고 했다. 대체 무슨 내용의 '세뇌'인지는 다비드의 짧은 영어실력 덕에 자세히 듣지 못했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한창 때의 아가씨로 취급 받을 나이의 이사벨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래도 이사벨은 행복해 보였다. 안락한 집과 다정한 남편 페르난도와, 그의 어머니 아르헨티나와 함께 편하고 따뜻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 간 후, 이사벨은 아들들을 되찾았다.)

이사벨은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요리 학교에 다니고 있단다. (이 이야기는 다음 여행기에서 다룰 것이다.)

사진의 근사한 아침식사 역시 이사벨의 솜씨다.

키토에 머무는 내내 이사벨, 페르난도, 아르헨티나가 나와 함께 모든 일과를 함께 하며 키토 곳곳을 보여줬다.

여기는 키토의 대형 쇼핑몰 Quicentro의 모습. 상당히 고급스러운 몰이었다. 

왼쪽부터 나, 이사벨, 그리고 아르헨티나. 

쇼핑몰 앞에서. 

그 다음에 이사벨과 아르헨티나는 나를 키토의 메트로폴리탄 공원에 데려갔다.

만약 이사벨을 만나지 않고 키토에 혼자서 왔더라면

나는 또 뜨내기 관광객처럼 열심히 지도를 뒤지면서 박물관이나 대성당을 찾으러 헤맸으려나.

이사벨이 아니었으면, 키토 시민들의 여유로운 오전 풍경을 볼 수 있는 공원에는 와 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커다란 공원의 싱그러운 녹색 기운 덕에,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사벨은 연신 키토는 매우 아름다운 도시라고 자랑을 했다.

배가 떠다니는 인공 강까지 있는, 아주 큰 규모의 공원이다.

아르헨티나는 매우 수줍고 점잖은 할머니다.

이사벨은 소녀처럼 작은 것에도 신이 나는 사람이다.


공원 안에 음식을 파는 리어카가 있었는데, 이사벨이 전통 음식을 한 번 먹어 보겠냐고 물었다. Comida Tipica(전통 음식? 고유 음식?)이라고 하도 강조를 하길래,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매콤새콤한 소스에 콩, 바나나, 돼지고기 등등 다양한 것들이 섞여 있던, 맛이 꽤 괜찮았던 요리. 


차마 다 먹지는 못하겠고 배가 부르다고 했더니 이사벨은 남은 바나나와 콩들을 공원에 있는 새들에게 모이로 던져주면서 아주 신이 났다.

정말 소녀 같은 이사벨. 

먹이를 먹으러 모여드는 새들에게 연신 예쁘다며 눈을 반짝인다. 길가에 피어난 꽃 한송이를 봤을 때도 이사벨은 신나서 예쁘다를 연발하고, 강아지 한 마리를 봐도 예쁘다고 한다. 

마음이 아이처럼 맑은 사람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예쁘고 신기해 보이는 걸까. 


공원 구경을 마치고, 이사벨은 나를 또 다른 공원에 데려갔다.

이번에 데려간 곳은 산 전체가 공원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악 국립공원 느낌이 풍기는. 

이 날 이 시간에 산 속의 공원을 찾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인적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산 속에서의 산책 시간. 

매일 어깨를 짓누르는 커다란 50리터 배낭을 매고 바쁘게 움직이던 내게는 조금 비현실적인 시간이었다. 

라마를 가두어 기르는 곳을 발견했다.

한국에는 라마가 없고, 나는 라마를 처음 본다고 했더니 이사벨은 더 신이 났다. 

안녕, 라마? 

이 때까지만 해도 페루에서 라마를 지겹게 보게 되리라는 건 몰랐지.

가까이 다가와준 녀석과의 셀카. 

전망대에 오르니까 키토의 모습이 한 눈에 보였다. 

어쩐지 <폭풍의 언덕>이 자꾸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다정한 이사벨과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뒷모습. 

숲 속에 난 길이 예뻐서 찍고 있으니, 이사벨이 저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했다.

쓸쓸하고 청순해보이는 뒷모습 사진이 탄생했다. 지금도 내 카카오톡 프로필사진 중 하나로 남겨져 있는 사진. 

생각해보니 이 사진에는 페이스북에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도 업로드한 적이 없는 사진이다.

남이 찍어준 내 사진은 유달리 못생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지금 다시 보니까 괜찮기만 하다. 편하게 웃는 내 모습이 좋다. 

나와 이사벨. 

이사벨도 셀카 찍는 걸 참 좋아한다. 

매일 밤마다 페이스북에 내 얼굴을 태그한 사진 수백 장을 올리곤 하던 셀카쟁이 이사벨 언니. 

쓰러진 나무와 텅 빈 노란색 벽의 집이 인상적이었던 공터.

하산하는 길에 마주친 강아지. 꼬질꼬질한 하얀색 곱슬 털이 귀엽다.

꽃 이름이 뭐였더라. 

이사벨이 예쁘다고 감탄하면서 꺾어 준 분홍빛 꽃 한 송이.


쓸쓸하고 황량하면서도 상쾌하고 고요하고 활기찼던 희한한 휴식의 날. 

칼리에서도 실컷 쉬었는데, 키토에서는 뭔가 관광지 좀 많이 다닐 줄 알았는데 '또' 쉬다니, 하는 생각에 약간은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키토를 떠나고 보니, 내 여행 일정 중 그렇게 푹 쉴 수 있던 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 한 저녁식사. 이사벨이 해물볶음밥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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