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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Jun 19. 2017

에콰도르 키토, 세상의 중심에 서다

적도의 도시 키토에서 보낸 예쁜 나날들

이사벨라와 페르난도는 원래 나와 함께 키토 투어버스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려고 했지만, 집에서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투어버스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흐음, 이제 어딜 함께 가면 좋지?"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둘은, 에콰도르의 전통 공예품을 파는 시장으로 날 데려갔다.

시장 안에 굉장히 많은 점포가 있고, 각 점포마다 파는 물건들의 생김새는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물건들의 가치를 낮잡아 보는 건 정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시장통에서 볼 수 있는 'MADE IN CHINA' 딱지가 붙은 하회탈 모형과는 달리, 이 물건들은 정말로 현지에서 손으로 만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어디 공장에서 다 찍어내는 물건이 아닐까" 했는데, 남미 곳곳에서 직접 손으로 팔찌를 만들고, 스웨터를 뜨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그런 불경스런 의심을 싹 거두었다. 

사진에 파란 앞치마가 보인다. 앞치마에는 주로 에콰도르의 전통 요리의 레시피가 영어로 적혀 있다. 이사벨은 저 앞치마를 보더니 나에게 하나 사 주고 싶다고 했다. 내일 자신이 데려갈 쿠킹 클래스에 마침 앞치마를 입어야 하니 꼭 하나 필요하다나. (쿠킹 클래스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나는 안 그래도 이사벨과 페르난도에게 신세를 지는 게 너무 송구스러워서 '또 선물을 받아도 되나' 싶었는데, 이 아이 같이 순수한 사람들, 나에게 진짜로 에콰도르의 기념품을 사 주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사벨은 내게 꾸이(남미에서 많이 먹는 기니피그 구이) 레시피가 적힌 초록색 앞치마를 선물하고 역시 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수제 귀걸이/목걸이/팔찌, 목공예품, 그림, 나무, 엽서, 드림캐처, 무섭게 생긴 가면, 손수건, 식탁보까지, 없는 게 없다. 

어깨와 양 손이 모두 무거운 배낭여행자의 신분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것저것 많이 사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든다. 

그랬더라면 아마도 나는 귀걸이, 드림캐처, 흰색 자수 티셔츠 등등을 잔뜩 쟁여왔을 것 같다. 

바닥에 철푸덕 앉아서 세상 예쁜 미소, 똘망똘망한 까만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아이가 귀여워서 카메라가 절로 갔다. 어쩐지 남미 아기보다는 한국 아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던 비주얼의 아기. 정말 귀여웠다. 

엄마를 따라 왔을까? 신나게 재잘거리던 소녀들. 

이런 인형들도 집에 데려오고 싶었다. 인형 밑에 보면 어떤 지역의 여인들인지 묘사가 되어 있다. 키토와 가까운 오타발로, 쿠엔카 등의 도시 이름이 보인다. 

알파카 털로 만든 것들은 볼 때마다 저 푹신한 털에 온 몸을 파묻고 싶어진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나를 구시가지로 데려왔다. 

사실 키토의 상징인 바실리카 대성당이 무지 보고 싶었지만, 계속 혼자서 내 멋대로 여행을 다니다가 이사벨과 페르난도와 아르헨티나의 일정에도 맞추려다 보니 참 아쉽게도 바실리카 대성당에는 가 볼 기회가 없었다. 

이 구시가지가 바실리카 대성당을 코앞에 둔 곳이라서 더 아쉬웠다. 야경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지는 못하고 거리 구경을 했다. 

뭐, 그래도 나름대로 이 따뜻한 노란 불빛과 가게에서 새어나오는 흥겨운 음악이 좋았던 곳이다.

키토의 밤은 고산 도시답게 쌀쌀하다. 밤에는 단단히 챙겨입고 나오는 것이 좋다.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또 뭔가 에콰도르 전통 음료를 맛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카페에 들어가 이 음료 한 잔씩을 시켰다. 아, 아쉽게도 이 음료의 이름이 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방금 구글에 검색을 해 보았다. 아무래도 이 음료는 canelazo(까넬라쏘)인 것 같다.

뜨거운 물, 계피, 나랑히야(naranjilla. 오렌지를 뜻하는 naranja와는 또 다른 과일인듯 하다) 브랜디로 만드는 술으로, 손님에게 환영의 뜻으로 대접한다고 한다. 또한 몸을 덥혀주기 때문에 추운 밤에 마신다고 한다.


아하,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다른 음료도 아닌 특별히 까넬라쏘를 대접한 이유가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이사벨이 거듭 추울 때 마시는 거라고 강조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렇게, 뒤늦게 깨닫는 그들의 착한 마음 씀씀이.

또 이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이사벨라는 이 날 아침부터 들떴다.

에콰도르 하면 적도, 적도 하면 에콰도르 아닌가.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 답게 적도가 지나는 곳, 즉 '세상의 중심(mitad del mundo)'에 나를 데려다 주고 싶다면서 신났었다.

저기 멀리 보이는 탑이 적도에 세워진 탑이다. 

아르헨티나, 페르난도, 이사벨, 그리고 나. 

아이고ㅠㅠ 날이 흐리긴 했지만 사진은 또 어쩜 이렇게 흐리게 나오는지. 

짜잔. 저렇게 두 발을 모으고 서면 나는 적도 위에 서 있는 거고, 

두 발을 떼면 몸 한 쪽은 북반구에, 다른 한 쪽은 남반구에 있는 셈이다. 

계속 '남미'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해 왔지만, 나는 이 날에서야 남반구에 몸을 들인 것이다. 

카메라를 밝게 조정해서 다시 찍어본 적도 탑. 사면에 동서남북이 적혀 있고, 저 노란 선이 적도.

기념품 가게 앞의 커다란 알파카 인형들이 너무 귀여워서 보고 있으니 이사벨이 찍어준 마음에 다는 사진 한 장. 


페르난도의 차는 아주 낡은 벤츠다. 마치 <라라랜드> 속에서 셉이 타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빈티지 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이 차에 대한 소소한 추억들도 잊게 될까 봐 적어 둔다.

빈티지 카였던 것과는 달리, 페르난도가 씨디를 틀면 상당히 최신 가요들이 나왔던 게 기억이 난다. 

가령 David Guetta의 Hey mama, Pitbull의 El taxi 같은 노래들. 그런데 차에 탈 때마다 나오는 노래 레퍼토리가 맨날 똑같았다. 몸이 들썩들썩, 라틴 클럽에 있는 듯한 느낌. 

Mitad del mundo에서 조금 더 차를 달려 어떤 산에 왔다. Reserva Geobotanica Pululahua라는 곳이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화산지형이라고 들은 것 같다. (방금 구글에 검색해보았다. 화산이 맞다.)

에콰도르에는 이런 화산 지형이 꽤 많은 듯했다. 

우리는 전망대에 서서 산을 바라봤다. 내 체력으로는 전망대에서 내려가서 이 화산을 한바퀴 돌고 올 수도 있었을 것 같았지만(그리고 그러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나 혼자서 멋대로 하는 여행이 아닌, 할머니 아르헨티나도 함께 하고 있으니 그럴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이 자욱하게 끼니까 조금 후에 엄청나게 으슬으슬 추워지더라. 역시 이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은 무리다. 

아쉬운 대로 이사벨 언니와 셀카라도!

화산에서 돌아 나오면 이렇게 돌을 쌓아 지은 사원이 보인다. Templo del sol, 태양의 신전이라는 뜻이다. 어떤 역사나 이야기를 가진 곳인지 궁금했고, 이 돌담을 따라 쭉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역시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함께라면 그럴 순 없었다. 

궁금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저 무지개 깃발은 무슨 깃발일까? 저기 돌로 만든 대야/책상 같이 생긴 것은 무슨 용도일까? 군데군데 놓인 사람 모양의 조각상은 애초에 사원을 지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걸까? 

사원의 강아지.

이 안개 낀 멋진 경치 속에서 살다니, 너는 보통 운이 좋은 강아지가 아니구나. 

이사벨이 요리한 오늘의 저녁밥은 빵을 곁들인 아히아꼬(ajiaco) 또는 산꼬초(sancocho). 두 요리가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를 찾아보기 위해서 구글을 뒤져보았으나 정확히 무엇이라고 단언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콜롬비아에 있을 때에도 이 수프를 여러 번 맛보았지만, 그 때마다 명칭이 달랐고 레시피도 조금씩 달랐다.

옥수수와 카사바가 많이 들어가 있었을 때도 있었고, 아보카도가 이 사진처럼 수프 속에 들어가 있을 때도 있었지만 아보카도와 밥은 따로 내올 때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 뜨끈한 수프가 너무 맛있고 내 입맛에 딱 맞았었다. 게다가 아보카도 하나를 통째로 넣은 이사벨 버전의 아히아꼬, 또는 산꼬초는 정말 맛있었다.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는 맛을 붙들고 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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