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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Aug 31. 2017

에콰도르 바뇨스, 죽음의 래프팅

두 번 물에 빠지면서 느꼈다. "나 정말 살고 싶구나"

바뇨스에 왔으면 익스트림(?)한 레포츠 하나는 꼭 즐겨봐야지.

한국에 있을 때부터 많은 여행자들의 후기를 보면서 나는 래프팅을 찜해뒀었다.

전날 래프팅을 예약해 뒀었던 투어사 Wonderful Ecuador로 향했다.

하얀색 밴에 여기저기서 일행을 태워 래프팅을 할 강으로 향했다.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 듯 했고,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친구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다.

함께 밴을 타고 온 우리 일행은 두 개의 보트에 나눠 타게 됐다. 팀을 나누는 기준은?

'익스트림'하게 즐기고픈 팀과, 얌전하게 즐기고픈 팀. 

정말 물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릴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살짝 있는 가운데, 내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영국남자들이 "익스트림! 익스트림!"을 외치길래 나도 얼떨결에 같은 팀이 됐다. 그리고 예쁜 어린 딸과 함께 온 가족 단위의 일행들이 '얌전한 보트'를 택했다. 이렇게 나는, 물지옥 당첨이요!


우리 래프팅 보트에 탑승한 가이드 이름은 파토(Pato). 엄청 유쾌하고 비글미가 넘치는 청년(?)이었다.

내가 보트의 홍일점이어서 그런지,  파토는 래프팅 내내 나를 허니(honey)라고 불렀다. 

보트에 탈 때는 손을 내밀어 나를 잡아주면서 "Come on, honey!" 내가 래프팅할 때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으면 "Are you all right, honey?" 아무튼 래프팅 내내 우리 보트는 달달한 허니의 향연이었다.  


나는 래프팅다운 래프팅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바뇨스에서 하게 될 래프팅을 예전부터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다. 선배 여행자들의 블로그 후기를 읽고 또 읽었다. 하나같이 바뇨스에서의 래프팅이 정말 '익스트림'한 수준의 스릴이 있다고 했다. 물에 여러 번 빠지게 되며, 급류에 휩쓸려서 혼자의 힘으로는 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익사할 뻔했다고들 했다. 


그 때 미리 알았어야 하는데, 바뇨스 래프팅이 얼마나 어마무시한지.

근데 나는 겁없이 '재미있겠네' 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렇게 겁이 없었을까?


직접 마주한 강물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일단 흐르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고, 강의 폭도 넓었으며, 마치 풍랑이 부는 바다처럼 파도가 쳤다. 물도 상당히 깊을 것이 분명했다.


어느 정도인지 사진으로 보는 게 빠르겠지..?

래프팅 보트뿐만 아니라 카약 두 세대가 우리와 함께 래프팅을 함께 간다. 이들은 틈틈이 우리 사진을 찍는 사진사이자 물에 빠졌을 때 우리를 구출해주는 아주 중요하신 분들. 

파토의 힘찬 구령에 맞춰서 헛둘헛둘! 노를 젓는다. 

신기한 건, 분명히 같은 강을 세일링하는 건데도, '얌전한 팀' 보트는 덜 흔들리고 우리 익스트림 팀의 보트는 미친듯이 흔들린다는 것.

강에 거칠게 파도가 튀어서 금방 강물로 세수를 하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강제 세수를 당하는 것처럼 어푸어푸를 하게 될 정도. 

갑자기 강한 파도가 다가오거나 소용돌이를 마주하면 파토가 외친다. 

"다들 각오해! 뒤집힌다아아아!"

풍-덩.

순식간에 시야가 새까매지면서 입 속으로 물이 막 밀려들어온다. 보트가 거꾸로 휙 뒤집히면서 전원 물에 빠진 것이다.

나는 분명히 수영을 배웠는데, 구명조끼도 입었는데. 속절없이 몸이 급류에 휩쓸린다.

마치 물을 내린 변기 속의 휴짓조각이 된 듯한 느낌. 몸이 살짝 뒤로 기울어진 채, 머리는 절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구명조끼를 입어도 내 몸을 자꾸만 밑으로 밑으로 잡아당길 정도로 강한 물살 때문에.

'물에 빠져 있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지?' 하고 그 와중에 생각했다. 생각보다 너무 긴 시간 물 아래에 있으면서 물이 폐 속에 꽉 차는 느낌으로 엄청나게 먹고 있었고, 오랫동안 숨을 쉬지 못한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와, 이러다 나 죽겠구나' 싶은 그 때.

여전히 물 속에 잠긴 눈에, 수면 위로 지나가는 구조 카약이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패들을 쥔 손을 위로 번쩍 들었다. 카약이 나를 다시 건져올려 보트 위로 올려놓았다. 릴랙스, 릴랙스! 카약맨이 외쳤지만, 난 지금 전혀 릴랙스가 되지 않는 공황 상태였다. 

그런데 공황 상태에 빠져있을 틈이 있냐고?

전혀.

보트에 올라와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구출된 사람이었고, 탑승하자마자 급류를 이기기 위해 다시 미친듯이 노를 저어야 했다. 

물에 빠졌을 때 너무 센 물살에 시달려서인지, 귀와 어금니가 얼얼하게 아팠다.

그 이후로도 보트는 한 번 더 뒤집혀서 또 다시 우리팀은 물에 빠졌다.

처음 물에 빠져보니 두번째는 조금 덜 공포스러웠고, 물에 빠졌던 시간도 조금 더 짧았다.

대신, 물이 꿀렁꿀렁 속에 차오르는 느낌이 괴롭고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다.

왼손 검지에 낀 묵주반지가 물살 때문에 손가락에서 빠져나갈까 봐, 이 묵주반지가 나를 이 여행에서 지켜줄 것 같아서, 이게 빠져버리면 혹시나 이 물 속에서 죽을까 봐 나는 물에 휩쓸리는 와중에 엄지손가락으로 반지를 꼬옥 붙잡고 구조를 기다렸다.


두 번 물에 빠지고 나니 래프팅도 끝에 다다랐다. 

해 본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다시 하라면 절대 하고싶지 않을 정도로 무서웠던 래프팅. 

그래도 이렇게 극단적인 스릴이 넘치는 경험을 해 봤다는 사실이 내겐 소중하니까. 



돌아오는 밴 속에서, 물을 하도 많이 먹어서인지 속이 꽉 차고 더부룩해서 아팠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서 다 함께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음식이 나왔지만 속에 물이 꽉 차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 결국 조용히 일어나 식당 화장실에 가서 헛구역질을 했더니, 물을 조금 토해낼 수 있었고 속이 편해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핼쓱해진 나를 보더니 파토는 또 "Awwww honey!!" 하며 깔깔 웃으며 껴안는다. 

파토는 이 일을 직업으로 삼다니, 정말 대단해. 리스펙. 


+)이 땐 정말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정말로 죽을 뻔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 경험이 참 고맙다.

물살 때문에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려는 묵주반지를 꼭 붙드는 내 엄지손가락을 느끼며 나는 새삼 살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강하다는 걸 실감했다.

내 존재가 참 부질없다고, 남에게 아무런 쓸모도 되어주지 못한다고, '나'라는 사람의 모든 면을 부정하고 깎아내리면서 자책하는 마음으로 꼬박 지난 1년을 살았는데. 심지어는 가끔씩은 나도 모르게 "죽고 싶다"라는 말이 툭툭 튀어나올 정도로 아픈 나날도 있었는데 

그 물 속에서 그렇게 버틴 걸 보면, 그 상처 입은 마음들이 본심은 아니었나 보다. 

서울은 없네!

다시 바뇨스 시내로 돌아왔다.

물을 토해내긴 했어도 여전히 속은 그닥 그랬다. 죽다 살아 돌아온 기분이었으니..

여기가 바뇨스의 플라자. 아담한 편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코뿔소 열차도 있었다. 

바뇨스에 가면 최대한 많은 액티비티를 즐기다 오는 게 내 목표였다.

Casa del Arbol 그네, 래프팅, 그리고...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꼭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번지점프를 하는 다리로 향했다. 마침 내가 갔을 때 한 남자가 번지를 하고 있었다. 

다리에서 밑을 내려다 본 모습. 번지점프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니 꽤 아찔한 높이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바람도 꽤 불고 밑에는 아주 우렁차게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이 있다.

할까? 말까? 망설이면서 다리 아래를 쳐다보고 있으니 번지점프 직원들이 한번 뛰어 보라고 성화다. 아,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은 뛰어야 하는데. 

정말 뛰고 싶은데,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고 무엇보다 방금 래프팅을 하고 돌아와서 여기서 또 뭔가 익스트림한 액티비티를 해 버린다면 정말 몸에 탈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구토가 올라와서 토사물을 흩뿌리며 공중에서 날면 안 되잖아. 

그래, 내가 지금 뛰어내리지 못하는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날씨가 으슬으슬하고 먹은 게 없으니 기운이 떨어져서야. 그러니 당 충전부터 하자! 당 충전을 하고 돌아와서 그 때 다시 뛰자! 나는 정말로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다시 시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초콜릿. 왠지 모르게 뜨끈한 핫초콜릿을 마시고 싶어서 초콜릿을 팔 만한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마침 운 좋게도 온갖 다양한 초콜릿 음료와 제품을 파는 초콜릿 전문점이었다.

따뜻한 핫 초콜릿

그리고 이어서 나온 팬케이크+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 카라멜맛 혹은 연유맛이 나는 남미의 대표적인 잼이라고 보면 된다. 카야잼과 누텔라를 잇는 달다구리한 마성의 맛. 

자그마한 초콜릿 카페에는 남자 주인장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바뇨스의 전체적 분위기가 바람이 많이 불고, 물소리가 들리고, 산으로 둘러싸여서 약간은 스산한데, 잠시나마 작은 공간에서 혼자 따뜻하고 달달한 걸 즐기니 좋았다. 아까의 래프팅으로 인해 탈탈 털린 영혼을 달래기 좋은 시간.


그러면 이제 당을 충전했으니 아까의 번지점프 다리로 다시 가 볼까? 했는데

이런. 벌써 번지점프대가 영업을 끝냈다. 

내가 잠시 당을 충전하러 간 그 사이에 영업이 종료되다니. 아쉬우면서도 속으로 은근히 기뻤던 겁쟁이의 마음. 

그래도 다리까지 간 김에 산책이라도 하고 싶어서 다리를 끝까지 건넜다. 다리를 건너서 멀리서 바라보는 바뇨스의 전경은 쓸쓸하면서도 예뻤다. 

저게 다 수많은 투어/액티비티 여행사,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식당, 상점들이겠지.

바뇨스, 너는 참 희한한 곳이야.

볼 거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정이 드는. 청량감 가득한 작은 도시.

번지점프 다리를 건너면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 같은 언덕이 나온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언덕길 위에서 심심해서 찍은 셀카. 

방금 팬케이크에 핫초콜릿을 마셔서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저녁을 먹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때마침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바뇨스에서 해 보고 싶은 게 있었으니, 바로 스파에서 사우나와 마사지 즐기기.

래프팅과 그동안의 여독으로 인해 지친 심신을 달래러 출발.

바뇨스에서 가장 유명한 스파일지도 모르고, 일단은 한국인 여행자들 중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El Refugio Spa로 택시를 타고 향했다.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엘 레푸히오'에 가 달라고 말하니 워낙 유명한 스파인지라 바로 아시더라는. 영업시간은 저녁 7시까지.



이 중 내가 선택한 서비스는 바뇨스 데 까혼+전신마사지.

바뇨스 데 까혼이란, 아래 사진처럼 나무통에 앉은 자세로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몸에다가 뜨거운 스팀을 쐬며 즐기는 습식 사우나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우나라서 너무나 신기했다. 사진을 찍어오지 못해서 공식 홈페이지의 사진을 퍼 왔다.

재미있는 건, 이용 시간이 45분으로 모두 똑같고, 손님들의 사우나를 관리해주는 직원이 있어서 스팀을 쬐는 중간중간에 저렇게 빨대를 꽂은 차가운 차를 입에다가 넣어주기도 한다. 직원의 더더욱 중요한 역할은 스팀을 쬐다 말고 손님을 통 밖으로 나오게 해서 정수리에다가 차가운 냉수를 촤르륵 부어버린다는 것.


그러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추워서 나도 모르게 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른다. 동양인 아가씨가 에콰도르식 스파를 경험하면서 혼쭐이 나는 모습이 재미있었던지 주변 손님들이 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었다. 


스파를 끝마치고 나오니 한 시간짜리 전신마사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지 강도를 '중간'으로 해달라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 받는 마사지보다는 덜 시원했다. 그래도 온 몸이 노곤노곤해져서 긴장이 풀리는 호사를 누리고 왔다. 엘 레푸히오(El refugio) 스파, 여행자들에게 완전 강력추천한다. 가격도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하니까.


참, 나는 이 날 사우나에서 안에 입을 수영복을 챙겨가지 않아 꽤 곤혹스러웠다. 저 습식 사우나가 남녀 공용이기 때문에 사우나를 할 동안 걸치고 있을 옷이 필요하다. 몸에다가 찬물을 흠뻑 붓기 때문에 일반적인 속옷보다는 비키니 등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나는 너무 급히 가느라고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하니 직원이 일회용 속옷을 빌려줬다. 그런데 이게 세상에, 부직포로 만든 브라와 팬티인 것이다. 게다가 직접 손으로 매듭을 묶어서 브라와 팬티의 끈을 만들어야 하는(!!) '조립식' 속옷이었다. 이게 행여 매듭이 풀려서 젖은 옷 아래로 몸이 다 비칠까봐 내내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결국 스파를 하는 도중에 브라가 어딘가로 물에 떠밀려 사라져버렸었다. 다행히 내가 위에 티셔츠를 걸치고 있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긴 했지만.


마사지까지 마치고 나오니 스파 마감시간인 저녁 일곱 시. 직원이 친절하게도 "택시를 불러줄까요?" 하고 묻는다.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 중심부로 돌아갔다. 이제 바뇨스엔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디를 가서 저녁을 먹을까, 꽤 한참 돌아다녔던 것 같다.

바뇨스는 관광도시인 만큼 다양한 가격대의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있다. 아주 저렴한 로컬 음식점부터 채식주의자 식당, 스테이크, 스위스 음식점까지.

그럼에도 소심한 나홀로 여행자는 여기저기 조심스레 기웃거리며 혼자 먹기에 좋을 식당을 물색하느라 시간이 더 걸린다.

의미 없는 방황을 하다가 들어간, Restaurante Parpadelle Pizza & Cucina라는 이름의, 꽤 근사하고 분위기 좋은 이탈리아 음식점. 

가격이 저렴한 덕에 남미는 혼자서 가도 꼭 사이드 메뉴나 음료수를 시키게 된다. 그렇게 주문한 카프레제 샐러드와 라자냐. 이것만 먹어도 배가 부를 텐데 뒤에 사이드로 빵까지 주다니.

그렇지만 왠지 바뇨스의 마지막 날이다 보니, 또 오늘 하루 죽다 살아났으니  근사하게 잘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좋은 핑계를 대고 호사스럽게 먹는다. 


이 날 밤 나는 밤 늦게 과야킬로 떠나야 했다. 과야킬이 에콰도르를 떠나서 페루 리마로 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에. 

바뇨스에서 과야킬까지는 대략 반나절이 걸렸던 것 같고, 그래서 새벽에 밤 버스로 과야킬로 가기로 결정했다. 바뇨스 터미널로 가면 바뇨스-과야킬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표를 구매할 수 있다. 나는 새벽 두 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구매했다. (솔직히 밤 12시인지, 새벽 한 시인지 두 시인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밤 늦게 출발하는 버스표는 출발 직전이 아닌 '미리'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터미널은 밤에 영업을 종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스가 새벽 한 시, 두 시에 바뇨스에서 출발한다 해도 이미 그 시간에 터미널에는 직원이 아무도 없으며 해당 버스 출발 시간에 그 버스만 터미널 앞 대로에 멈춰서서 승객을 태우고 갈 뿐이다.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배낭만 쫄래쫄래 매고 무작정 바뇨스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심히 당황했다. 딱히 터미널 앞 플랫폼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이제 밤이라서 인적도 완전히 드물어졌고. 어떡하지? 하다가 터미널 근처의 작은 음료수집이 늦은 시간까지도 문을 열었길래 '과야킬 가는 버스 타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어보니,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큰 대로 건너편에서 타면 된단다. 

노란색 원이 터미널, 빨간색으로 빗금친 곳에서 새벽버스를 타면 된다

길을 건너서도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버스가 오는 게 맞는 건가?"하고 불안한 마음에 말똥말똥 서 있는데 한 에콰도르 청년이 다가온다.

"Disculpa(실례합니다). 나 과야킬로 가야 하는데, 여기 있으면 되는거야?"

"응 맞아. 나도 지금 과야킬로 가는 거거든. 너랑 같은 버스를 타는 거야."

원래 버스가 조금씩 늦게 오는 거니 안심하란다. 자기는 매주 주말마다 과야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로 그 청년과 말도 안 되는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둘 다 만 23세 동갑인 것이며, 그 청년이 바뇨스에도 집이 있지만 과야킬에도 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내가 영 불안해 보이는지, 이 청년은 "살사 음악 좋아해?"라면서 자기 휴대폰으로 살사 음악을 틀어준다. 

 근데 "남자친구 있어?"는 왜 물어보니. 하여간 남미 남자들이 나랑 말을 섞을 때마다 꼭 빼놓지 않는 질문이다.

 아무튼 고마운 바뇨스 동갑내기 친구 덕에 기다리던 버스가 왔을 때 무사히 탈 수 있었고, 버스는 깊은 밤을 달려 과야킬로 향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뇨스에 와 있을 거야. 나는 버스 안에서 잠을 청했다.


에콰도르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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