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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Feb 09. 2022

너는 꿈이 뭐야?

꿈이라는 동사


마흔세 번째 이야기




멈춰 섰다.

아무것도 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할 능력은 있는 사람인지를 되묻고 있었다.

아침에 내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버거웠다.

노트북을 켜고 멍하니 앉아서 단 한 글자로 못 쓰고 노트북을 닫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서 마치 대단한 작가라도 된듯한 코스프레를 오랜 시간 했다.


새벽 5시에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었다.

사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쓰다 만 글을 써야 한다거나 블로그 포스팅을 해야 한다거나 공연을 확인해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들은 아니니까. 내가 안 하겠다고 해서 누가 겁을 먹거나 걱정을 하거나 일이 멈춰 서거나 하지는 않는다. 


새벽 창가에 마련한 책상에 앉았다. 몸을 반쯤 틀어 거실 창을 보니 아파트 입구는 일을 나서는 차들이 한대, 두대 제 길을 나서고 있다. 

가야 할 곳이 있고 가는 길을 알고 있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을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다.

우회전을 하는 차가 있고, 좌회전을 하는 차도 있다.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고 멈춰 선 나는 그 차들이 부러웠다.


-네 꿈이 뭐야?

어린 시절 수없이 들어본 그 질문이 머릿속에 멈춰 섰다.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 중 누가 좋은지를 선택하는 것만큼 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일단 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말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꿈을 물어볼 때면 

-국무총리 부인이 될 거야

이렇게 답을 하곤 했다. 대통령도 아니고 대통령 부인도 아니고 왜 하필 국무총리 부인이었는지는 지금도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꿈은 옷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한창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인형이 인기를 끌었던 때였다. 엄마는 절대 그 인형을 사주지 않으셨다. 아이에게 인형을 사줄 만큼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지만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굳이 돈 들여 사지도 않으셨다. 엄마가 사주지 않으면 내가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과 연예인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을 잘 기억했다가 밤마다 종이에 그리고 색칠을 해서 인형과 옷을 만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메리야스 상자에 인형과 인형 옷들이 가득 찼다. 


엄마는 굉장히 화를 내셨다. 공부 안 하고 밤새 인형을 그리고 만드는 것을 마뜩잖아하셨다.  엄마는 버리고 밤새워 인형과 인형 옷을 만드는 나와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계속됐다. 그때는 디자이너란 직업이 생소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혹여 이 아이가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줄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가르쳐주지 못할 공부여서 일찌감치 포기를 시키셨던 거였다.


그 후로도 꿈은, 아니 내가 바라던 직업은 아주 많이 바뀌었다. 수습기자로 들어간 잡지사에서는 능력이 없으니 빨리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듣고 퇴사를 했다.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나는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도 그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쓴 글을 바라보며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할 때면 그때의 기억이 송곳처럼 여기저기를 찔러댄다. 


꿈은 내가 평생을 걸쳐 이루고자 하는 목표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꿈은 명사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 나는 수없이 넘어져도 일어나지 못하고 울고 있는 아이처럼 굴었다. 

꿈으로 가는 길은  언제든지 방향을 고치고 방법을 수정해도 된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지금 넘어져서 울고 있는 나는 여전히 명사인 꿈에 짓눌려 있다. 


거실 창 밖으로 가야 할 길을 나서는 차들이  늘었다. 

이른 새벽 시작은 나하나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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