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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Feb 10. 2022

내 안에 또 다른 나

성인애착 유형검사



마흔네 번째 이야기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방문을 박차고 들어와 물었었다.

-우주는 엄청 크잖아. 거기에 지구는 작은 행성이고. 거기에 우리나라는 정말 작은데 거기서 살고 있는 나는 진짜 우주의 작은 먼지보다도 더 작은 거지? 그럼 내가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는 건데 난 뭐야?

뜬금없이 말을 쏟아 놓고 펑펑 울었다. 그땐 이 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접어들어 겪는 정서적 혼란쯤으로 이해했던 일이었다.


열여섯 청소년이나 정서적 혼란기에 겪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찾기를 


반백살이 넘어서도 하고 있을 줄을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산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고, 남에게 크게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싫은 사람 굳이 만나려고 애쓰지 않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은
오늘 아침 7시 7분에 일이었다.



요즘 가장 '핫'한 사람 가운데 오은영 박사가 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육아 코칭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분이다. 하루는 유튜브 검색에 올라온 영상을 보다가 '성인애착 유형검사'를 어른들들도 해보라는 오은영 박사의 말을 다이어리 구석에 적어 놓았다. 


유행이라는 MBTI 검사도 아이 성화에 못 이겨할 만큼 SNS에 등장하는 검사를 즐기지 않는데 

오늘 아침 나는 내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다이어리를 정리하다 '성인애착 유형검사'란 메모를 보자마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질문 하나하나를 정독하여 검사를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솔직하게 답변했으니 이제 결과를 볼까? 어디 제대로 나를 분석했는지 보겠어. 

결과는 충격이었다. 내가 답을 잘못했나? 이거 믿을만한 검사 맞아?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검사 결과를 부정해보려고 글자 하나하나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불안정 애착(회피)(거부 회피형)

내 안에 나,

내가 몰랐던 나, 

아니 알고 있었지만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나,

그런 내가 거기 있었다.


여전히 나는 이런 검사를 믿지 않는다. 

이런 단편적인 검사로 나라는 우주를 몇 줄로 정의할 수 없다는 오만함으로. 

하지만 이것은 애착 유형검사이지 내 모든 것을 평가하는 평가지는 아니니까.

결과가 당신은 이런 부족한 사람이니 문제라는 뜻은 아니니 말이다.

애착 유형이 그렇다는 것이지.

나는 결과 대부분을 인정했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타인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남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것도 남을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타인에게 상처받을까 봐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을 믿지 못하고 늘 남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적당선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일 거다.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지 않을까?

나를 전자로 볼 것이냐 후자로 볼 것이냐는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와 같다.

나는 타인을 믿지 않지만 그래서 더 독립적으로 살 힘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남을 향한 의심의 눈을 조금 낮추고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연습은 할 생각이다.

나의 독립이 나의 고립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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