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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Feb 14. 2022

카더라 통신

믿거나 말거나




마흔다섯 번째 이야기









미용실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머리스타일이 외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비싼 미용실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와 맞는 것도 아니고

싼 미용실이라고 해서 미용실력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면 그 또한 오산이다.


내게 맞는 커트를 해주거나 펌이 내 마음에 쏙 들면 그때부터 그곳은 단골 미용실이 된다.

단골 미용실로 정해지면 원장님과 끈끈한 유대 관계가 형성된다.

매번 갈 때마다 따로 요청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한번 정한 미용실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사를 가면 가장 곤란한 것 중 하나도 미용실을 바꾸는 일이다.





그 미용실은 아파트 상가에 있었다.

집 앞이라 일부러 차를 끌고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없었고 

이사 와서 동네를 빨리 파악하기에 미용실만 한 곳도 없었다.

그 미용실은 평일에도 늘 사람으로 북적였다.

유명한 미용실처럼 미용사가 여러 명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원장 선생님 한 분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길게 길러본 적이 없다.

대부분 귀밑으로 약간 내려오는 단발머리이거나 그보다 조금 짧은 쇼트커트 머리로 수십 년을 살고 있다.

모발이 얇아서 자주 하면 손상돼서 파마도 일 년에 두 번 정도 할 뿐이다.

그날도 한 달새 길어진 머리를 다듬기 위해 미용실을 찾았다.


의자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미용실에서 한바탕 이야기꽃이 피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주로 화두가 되는 이야기는 연예인과 정치인들의 이야기다.

지금은 미용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성지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따금 이야기하는 당사자들만 아는 옆집 @@네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고

자식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가 시리즈로 펼쳐지기도 한다.


동네 미용실은 그래서 동네 사랑방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네가 사업을 말아먹었다는 이야기,

누구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

어떤 연예인이 이혼을 했는데 남편이 아내를 때렸다는 이야기,

어떤 정치인 자식이 먼 미국 땅에 으리으리한 집을 사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는 출처가 없다.

아무도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서 봤다거나 누구에게 들었다는 것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이 직접 봤다거나 아니면 언론에서 밝혀진 거라는 객관적인 근거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 많은 이야기는 

-아이고, 그 여자가 그렇대

-그 남가가 알고 보니 그런 놈이래


동네 사랑방에서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목숨 걸고 근거를 묻는 나 자신이 좀 웃기기도 하다.

세상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 이야기인데 머리 말며 시간 때우자고 하는 이야기에 뭐 그리 진심일 것이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웃자고 했던 그 이야기들은 결말이 확정된 사실로 끝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웃지 못하고 귀를 닫는 이유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 널리 퍼져 왜곡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그 피해자가 내가 안된다는 보장도 없다.

또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 속에 있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 해도 

왜곡된 이야기에 주인공이 되어도 된다는 법도 없다.


정감 있는 사랑방 분이기가 좋아서 다녔던 동네 미용실을 떠난 것은 그 이유가 컸다.

이제는 동네 미용실을 떠나 

돈을 좀 더 내야 하고 예약을 해야 되는 미용실을 간다.

물론 카더라 통신은 이제 동네 미용실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핸드폰을 열면 그 속에는 수천수만 개의 카더라 통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하고 애써 누르지 않으려 하지만

요즘 카더라 통신을 보면 동네 미용실은 아주 귀여운 수준이었다 싶다.



내가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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