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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pr 13. 2022

엄마는 어른이잖아

어른은 조금 나이 먹은 초보자일 뿐,





독립 청소년(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하니까 듣기 싫다고 해서 새로 붙인 이름)인 둘째 아이는 세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낸 두 권의 책은 펀딩으로 냈다. 정확하게 ISBN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소리 소문 없이 혼자 뚝딱뚝딱 일을 내서 엄마인 나조차 책을 낸 것을 한참 뒤에야 통보를 받고 알 정도 다다. 


아이는 이번엔 제대로 책을 내고 싶다고 ISBN 받는 법을 물었다. 책을 출간하려면 ISBN이란 국제표준 도서번호를 받아야 한다. 이 번호는 개인이 받을 수 없다. 나 역시 글을 써서 넘겨주는 것까지만 해봐서 정작 자세한 과정을 몰랐다. 출판 관계자에게 문자를 해서 묻고 검색을 하고 나서야 책 출간 과정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그거 개인이 받을 수 없대. 출판사가 있어야 한대."

"그럼 내가 1인 출판사를 낼까?"


요즘처럼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편한 세상에 '1인 출판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청에 문의하면 아주 친절하게 필요한 서류도 알려주었다. 전화기 너머로 시청 공무원이 알려주는 서류를 챙겨서 시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주로 '문화관광과'이지만 내가 사는 지역 시청에는 '문화예술과'라는 곳에서 신고를 함면 된다고 했다. 물론 이 과정은 성격 급하고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내가 알아봐야 했다. 


서로의 일정이 많다 보니 일정 맞추기도 쉽지 않아 생각난 김에 시청을 가기로 했다. 이사 와서 처음 가보는 시청이기도 하지만 시청, 구청 같은 관공서는 아무리 가도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그럴 때는 혼자 아는 척을 하지 말고 안내원에게 물어보면 된다. 또 찾다가 모르면 또 물어보면 된다. 


그렇게 물어물어 '문화예술과'를 찾아갔다.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가져온 서류와 출판사 신규신청서만 작성해서 접수하고 집에 가면 된다. 서류를 작성하는 '문화예술과'에서는 서류를 작성하고 접수는 다시 민원실에서 하면 된다. 이 시청은 유독 건물 내부가 복잡했다. 이럴 때는 안내표지판보다 건물 경비원 아저씨에게 묻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경비원 아저씨에게는 예의 바르게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꼭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해야 한다. 모든 건물에 계신 경비원 아저씨에게만 잘 보여도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인허가 접수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민원실을 찾아가며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네가 사장이야. 네가 출판사 대표니까 접수는 네가 해"

"내가 사장이야?"

"그럼 네 이름으로 했잖아."


민원실을 들어가서 접수하는 곳을 찾는 아이는 쭈뼛쭈뼛 거리며 서있었다. 안내원은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아이는 어느 시점에 물어야 할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성격 급한 내가 나서고 말았다. 안내원은 안내 박스에서 나와 친절하게 접수하는 곳을 알려주었다. 이제 서류만 내면 된다. 

"김@@씨 되세요?"

공무원이 나를 본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접수대 의자에 앉은 아이를 가리켰다. 


이 모든 과정은 30분도 채 안돼서 끝이 났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일인 줄 나라고 알았을까?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니 나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내내 내 옆에서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자기 방에 들어오는 것도 싫어하는 아이다. 안고 뽀뽀라도 하려면 "왜 그래?"라며 되묻던 아이다. 


"너 왜 그렇게 엄마 옆에 붙어있어? 너 엄마 쫄쫄이야?"

"응, 엄마 쫄쫄이야."

"이거 네 생각인데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도 처음이라 모르는데."

"엄만 어른이잖아."


그래, 엄마 어른이야. 그런데 어른이라고 다 아는 거 아니야.

어른도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많아. 하루하루가 처음일 때가 더 많다고.

어른도 매번 세상이 두렵고 무서워. 

오늘 엄마 못 봤어? 모르니까 자꾸 물어보잖아. 모르니까 두 번 세 번 보잖아. 

그러면 돼. 모르면 물어보고 실수하면 다시 하면 되는 거야.

어른은 그저 경험을 몇 번 더 해본 초보자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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